얼마나 지났을까? 왜가리가 날아오르자 모든 긴장이 사라지고 평안해진다. 어찌 보면 흔한 광경이다. 그렇다고 직접 대면이 쉬운 일도 아니다. 잡느냐, 잡히느냐 대결국면에 둘 사이 신경전이 대단하다. 잡아먹으려는 자도, 피하려는 자도 생사가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정중동의 치열한 사투(死鬪)가 은밀히 전해온다. 시상이 떠오르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까? 같은 소재를 다룬 시의도가 있어 소개한다.
양기훈 작, 노위도(견본수묵, 108 × 40.5㎝, 개인소장) |
눈으로 옷을 짓고 옥으로 발을 만들다(雪作衣裳玉作趾)
갈대 우거진 물가에서 물고기 기다린 지 얼마인가(窺魚蘆渚幾多時)
라고 써 내려갔다. 심술 사나운 이 사람, 그때야 그림을 펼친다. 잿빛 몸통에 검은 다리, 먹으로 그린 왜가리다. 눈발이니 옥이니 하는 시구와 영 맞지 않는다. 그대로 골탕 먹고 웃음거리가 되는가 싶었는데, 성삼문은 태연히 다음 시구를 잇는다.
우연히 산음 지방 날아 지나다(偶然飛過山陰縣)
잘못하여 왕희지 벼루 씻은 연못에 떨어졌구나(誤落羲之洗硯池)
시구 둘로 멋들어지게, 백로가 흑로로 바뀌었다. 즐거움에서 쾌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이는 '수묵 백로도에 부침(題水墨白鷺圖)'으로 서예가들도 즐겨 쓰는 시라고 한다. 왕희지(王羲之, 321 ~ 379, 중국 서예가) 살던 곳에 백로가 날아가, 벼루 씻은 물에 발 담가 발이 검어졌다는 것이다. 왕희지는 서성으로 불리는 명필가다. 알다시피 중국인은 허풍이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왕희지는 곧잘 연못가에서 글씨를 썼다 한다. 연못에 벼루를 씻었는데 나중에 연못 물 전체가 검게 되었다. 묵지(墨池)라 부른단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희지의 글씨에 대한 각고면려(刻苦勉勵)를 설명한 것이리라.
재치가 돋보여서일까? 재미있는 탓일까? 차용이 서예뿐 아니라 시의도에도 보인다. 그림은 양기훈(楊基薰, 1843 ~ ?, 조선 도화서 화원)의 <노위도(鷺葦圖, 견본수묵, 108 × 40.5㎝, 개인소장)>이다.
양기훈 그림은 다수가 전하지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백로 그림도 여러 폭이 전한다. 갈대와 새의 특징을 잘 살려, 특히 노안(蘆雁)을 많이 그렸다.
노위는 해오라기와 갈대이다. 명칭부터 정리하자. 해오라기, 황로, 노랑부리백로,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 흑로, 왜가리 등 모두 황새목 백로과에 속한다. 해오는 흰색을 나타낸다. 따라서 해오라기는 백로를 지칭했으나 요즘엔 다른 아종이 해오라기라 불려 헷갈린다. 왜가리는 머리에 검정 긴 댕기가 있고 목에는 점줄 무늬, 몸은 회색, 어깨가 검은 특징이 있다.
성삼문 시가 문집에도 전하지만 세간에 애송되고 널리 알려졌던 모양이다. 그림 왼편에 '窺魚江上幾多時(강위에서 물고기 엿본 지 얼마인가)' 두 번째 구와 유사한 시구를 적었다. 시의도 글이 그러하듯, 한 행만 적어도 시 전체를 연상해야 한다. 그림은 물론, 관련 내용 또한 감상 대상이다. 머리 풀어헤치고 굽은 갈대 아래, 백로 한 마리가 서성이며 두리번거린다. 몰골법으로 그린 갈대와 백로, 농담이 잘 어우러져 있다. 생사의 갈림길이지만, 여유롭고 평화롭다. 평안한 느낌이다. 절제의 멋이 있다.
역병을 비롯한 모든 먹구름을 거두어 내자. 어두움 밝히는 빛이 더욱 찬란하듯, 더불어 아름답고, 멋으로 충만한 신축년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