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중국에서 수입된 고품질의 자기는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어서 한때 은은한 흰색 바탕의 청화백자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으나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고온에서 구워야 하는 기술도 어려웠다. 자기를 만들기 위한 수백 년 동안의 노력 끝에 1710년 무렵 독일 지역에서 처음으로 경질 자기의 생산에 성공했고 이후 제조기술은 유럽의 여러 곳으로 빠르게 퍼졌다. 자기는 고온에서 구워야 하는데 온도를 측정할 수 없었으므로 최적 조건을 재현성 있게 만들기 어려웠다. 가마 안의 색을 눈으로 보고 어림짐작으로 온도를 추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감각기관은 그때의 기분에 따라 다른 결과를 냈고 눈으로 짐작하는 가마 안의 추정 온도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조시아 웨지우드는 1759년 도자기 공장을 세웠는데 사람의 눈이 아닌 도구를 이용해 고온을 측정했고 그에 따라 고온을 제어할 수 있었으며 균일한 온도에서 구운 자기의 품질과 수율은 대폭 올라갔다. 또 여러 가지 조성과 제조 방법을 바꾸고 시험해 특색이 다른 새로운 자기들을 만들었다. 웨지우드는 이외에도 수많은 혁신을 했다. 최고급 자기를 개발해 영국과 러시아 왕실에 납품했고 상류층의 차문화 발달에도 크게 기여해 근세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의 국력에 걸맞은 고급문화를 공급했다. 웨지우드는 도자기 회사 사장으로서 사업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과학자로서 영국 왕립협회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자기의 발상지인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제조기술에 큰 발전이 없었던 반면 뒤늦게 만들기 시작한 유럽에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기 제조기술을 크게 발전시켜 나중에는 동양보다 훨씬 좋은 제품들을 만들게 됐다.
웨지우드는 다윈 가문과도 연결된다. 버밍엄에 1765년 무렵 친교 모임으로 만들어진 '루나 소사이어티'에는 의사인 에라스무스 다윈, 자기 회사 사장인 조시아 웨지우드, 증기기관의 혁신가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의 사업화를 지원했던 매튜 볼턴, 산소의 발견자 조셉 프리스틀리 등이 있었다. 이들은 보름달이 가까운 일요일 혹은 월요일 오후에 만나서 밤까지 최신 과학 정보를 교환하고 논의했다. 이런 인연으로 에라스무스 다윈의 아들과 조시아 웨지우드의 딸이 결혼했고 불세출의 과학자 찰스 다윈이 태어났다. 또 찰스 다윈은 웨지우드 가문의 딸이자 외사촌인 에마 웨지우드와 결혼했다. 찰스 다윈은 자신과 아내의 재산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평생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했고 50살이 되던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전시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고온 온도계는 이렇게 다윈의 진화론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살짝 생뚱맞은 비약이지만 조시아 웨지우드가 고온 온도계를 개발하지 못했더라면 영국의 고급 자기와 차문화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고 또 찰스 다윈의 진화론도 안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웨지우드의 고온 온도계는 영국이 자랑할 만도 하다. 구자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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