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교수 |
문제는 구축이 완료돼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방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초 ‘데이터3법’이 통과하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데이터3법 만으로는 동의를 받은 목적 이외의 활용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코로나19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25일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개인정보의 동의 목적 외 활용 시 원시데이터 관리 주체인 의료기관의 책임 범위를 명시해 면책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당 가이드라인은 시민단체에서도, 산업체에서도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시민단체의 높은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산업체의 입장에서는 예전과 다름없는 높은 장벽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더 큰 대의(大義)에 시선을 돌려보길 바란다. 우리가 치료지침으로 삼고 있는 현대의학의 교과서는 어느 한 줄도 근거 없이 적히지 않았다. 여기서 '근거'란 인류가 의학이라는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진행했던 수많은 임상시험을 말한다. 특정 질환의 유병률이 얼마인지부터 병리기전과 더 나아가 어떤 성분이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두 인류가 함께 고생하면서 얻어낸 소중한 결과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데이터 홍수의 시대가 도래했다. 빅데이터란 과거에 없었다기보다 그동안 수집하지 못했거나, 정형화(디지털화)하지 못하고 흘려버렸던 시간의 기록을 데이터로 모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컴퓨터의 발달과 더불어 빅데이터 안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건강 증진 및 질병 퇴치를 위한 소중한 근거들을 찾기 시작했다. 빅데이터의 잠재적 가치에 대해 이제는 이견이 없으리라. 그런데 지금까지 인류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갖게 되면서, 소유권의 문제가 큰 이슈로 부상했다. 가치가 있다면 나눠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헬스케어와 관련한 데이터는 누구의 소유일까? 매우 복잡한 문제다. 마치 마이클 샌댈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상황에 따라 정의의 판단 기준이 미묘하게 바뀌었던 것처럼 말이다. 의료데이터가 환자의 신체정보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의료데이터는 환자의 소유일까, 의료데이터를 생산(또는 작성)하고 지금껏 관리해온 의료기관은 전혀 지분이 없을까? 만약, 공동소유를 인정해야 한다면 그 비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껏 한 번도 거래되지 않았던 물건의 가치를 정하는 건 파는 사람에게나 사는 사람에게나 매우 조심스럽다. 그렇다 보니, 의료 빅데이터를 쌓되, 데이터 거래에 대한 논의는 자꾸 구천을 맴돈다.
나는 데이터 유통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로 미루더라도 빅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임상연구는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필자가 속한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가 진행 중인 연구 중 하나는 병원의 진료데이터를 활용해 약물들의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난 의학사를 돌이켜보면, 기형아를 유발했던 임신 중 입덧치료제 탈리도마이드와 같이 동물시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시장에 출시된 이후에도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뒤늦게 발견돼 전량 회수한 사건들이 종종 있다. 그런 발견이 조기에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은 치명적인 부작용이라고 하더라도 발생 빈도가 낮으면, 의사 개개인의 진료 경험만 가지고는 인과관계가 관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데이터의 시대가 열리면서 인류는 이와 같은 부작용을 비교적 일찍 발견할 기회를 얻었다. 전국 의사, 아니 더 나아가 세계 의사들의 경험을 빅데이터로 묶어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 가능하다. 인류의 건강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 남일 같아 보이는가. 그럼 그 혜택을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누릴 수 있다면 어떤가. 바로 이것이 내가 빅데이터 연구를 오늘이 아닌 내일로 미루고 싶지 않은 절실한 이유다.
/김종엽 건양대의료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