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
신박한 정리는 시종일관 '비움'을 강조한다. 비워야 여유가 생기고, 비웠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철학적 관점이 숨어있다. 필요 때문에 무언가를 소유하지만, 때론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불필요한 마음을 쓰게 된다는 면에서 특히 그렇다. 10년 전 타계 이후 절판된 법정스님의 저서 '산에는 꽃이 피네'는 무소유와 비움의 미학을 그렸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성철스님도 자신이 쓴 책에서 소유의 허망함에 대해 '(중략) 물욕을 버릴 때 본래 낙원인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렇게 성철과 법정은 구도자의 전형을 보여주듯 일생을 통해 청빈한 삶을 실천했다. 이에 반해 '남산뷰' 실소유 주택과 호화스러운 생활이 방송을 타면서 '풀(Full)소유' 논란에 휩싸인 혜민스님 같은 종교인도 있다. 그렇다면 무소유를 행한 성철과 법정은 위대하고, 소유하며 산 혜민은 비난받아 마땅한가. 물론 불법한 고급주택 취득과정과 종교인의 탈을 쓰고 영악한 사업가의 면모를 보인 혜민스님의 행태는 선(線)을 지키지 않았기에 쉽게 용서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무소유는 고귀하고 소유는 역행이다'라는 식의 섣부른 판단이 아닌, 취하고 버리는 과정에서의 '마음 끄들림'과 '이타심'의 발현이 아닐까 한다. 소유하지 않은 삶이든 물욕의 삶이든 추구했다는 점에서 욕(慾)에 기인한 끌어당김이다. 더 중요한 건, 욕(慾)을 부릴 때 심(心)이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심'을 떼어놓고 욕망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가능한 한 힘껏 욕망하되 마음작용을 내려놓음으로써 괴로움에서 멀어졌으면 한다. 또 '나도 좋고 남도 좋을' 욕망을 추구해야만 비로소 '완전한 소유'가 가능해질 것이다. 마음속 부담감이 없는 욕망만이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병 속의 금덩어리를 움켜쥐고서는 손에 상처만 남길 뿐 결코 병 밖으로 빼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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