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어만│허형은 옮김 │갈라파고스
저자인 바트 어만은 어린 시절 하나님을 생각하면 곧바로 사후 세계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죽음은 모르지만 죽으면 천국과 지옥에 간다는 진리를 믿으며 기도문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고, 교리를 공부하며 기독교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다 프리스턴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며 그는 '의심'을 품게 된다. 잘못된 믿음을 좇다가 영원한 벌을 받게 될까 성경을 의심하고 부정하고, 결국 하나님까지 부정하게 될까봐 그는 혼란 속에 갇힌다. 바트 어만은 결국 기독교를 떠난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것은 사후세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었다. 도대체 누가 사후세계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인가. 이 책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두렵고 황홀한 역사'는 길가메시서사시부터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까지 산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후 세계의 역사를 톺아보는 길잡이다.
바트 어만은 심지어 예수조차 그런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고, 지금 믿어지는 것처럼 단일한 사후 세계관이 기독교에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획일적으로 믿어왔던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을 다시 성찰할 수 있게 돕는다.
기원전 7세기 서사 시인 호메로스는 죽고 난 이들이 갈 곳으로 행복한 천상의 '엘리시온', 고통과 허무뿐인 지하 세계 '하데스'를 구체화한다. 그 후 수 세기가 흐른 기원전 1세기에는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명확해지는데, 이는 지난 생에 대한 응보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천국과 지옥의 개념으로 다가간다.
이 두 서사 사이에는 플라톤이 있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라며 죽은 뒤에 이루어지는 심판의 장소를 언급하는데 부정한 삶을 살았던 혼들은 거기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방황하게 되지만 고결한 혼들은 신들 곁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천국과 지옥이 자리 잡은 것은 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마태복음 25장은 플라톤과 많은 사상가의 궤와 같이한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영광은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던 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는 가장 어렵고 소외된 이를 외면하지 않고 돕는 것, 그로써 살아가는 동안 의로움을 행하는 것이 두렵고도 황홀한 약속으로 예수가 이끌고자 했던 명제라는 설명이다.
바트 어만은 이렇게 정의한다. 삶의 긴 여정 끝에서 모든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모든 생의 목표이자 가장 마땅한 삶의 방식을 죽음에 대한 예습이라고 보듯 궁극적으로 정신이 육신을 초월하게 될 죽음은 준비된 이에게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니라고.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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