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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시골에선 김장김치를 짠지라고 불렀다. 짜서 짠지라고 불렀을 것이다. 지금은 아주 좋아하지만 어릴 적 난 생김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김칫국 정도나 겨우 먹을까. 짠 건 딱 질색이었다. 30대 중반까지도 푹 익으면 그때서야 찌개나 국을 끓여 먹곤 했다. 짜지 않은 삼삼한 김치를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년 시절, 한 겨울 깊은 밤에 먹었던 동치미는 맛의 추억이다. 겨울이라 저녁을 일찍 먹은 탓에 배가 출출하기 마련이지만 딱히 먹을 건 없었다. 그러면 엄마는 동치미 무를 길쭉길쭉하게 썰어 큰 대접에 국물과 함께 가져온다. 식구마다 하나씩 들고 먹으면서 얼음이 뜬 새콤한 국물을 마시면 잠이 확 달아난다. 어떤 날엔 장독대 옹기에 쟁여놓은 홍시도 먹는다. 추운 겨울 최고의 군것질거리다. 문명화 되지 않은 겨울밤은 참 길었다.
중 3때 방영웅의 『분례기』를 처음 읽었다. 1967년 '창작과 비평'에 연재된 장편소설인데 그 후로 열 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소설의 무대는 충남 예산으로 60년대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삶을 질펀하게 그렸다. 걸쭉한 충청도 말과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성격, 그 중 노름꾼 석 서방의 딸로 뒷간에서 태어난 '똥례(糞禮)'의 불행한 삶이 강렬했다. 똥례는 허랑방탕한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밥 하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는 게 일이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남들 다하는 김장조차 못한 똥례네는 봄에 이웃 사람들에게 시어 터진 김치를 얻어다 먹는다. 밥상에 둘러앉아 신 김치를 쭉쭉 찢어 밥에 얹어 먹는 똥례네 식구들의 볼이 미어터진다. 내 입안에도 침이 고인다.
김치는 밥을 먹는 한국인에게 없어선 안 되는 음식이다. 돈가스 먹을 때도 김치가 나온다. 밥과 함께. 한국인의 유전자엔 김치에 대한 맛의 기억이 각인돼 있다. 지금 내가 먹는 음식들의 기원을 생각하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배추, 무라는 풀을(처음엔 그냥 풀이었겠지) 요리해 먹게 됐을까. 경험만큼 큰 선생도 없다. 김치는 재료가 다양하다. 굴, 생태, 낙지, 생새우, 황석어젓, 조기젓 등 지역 산물이 반영된다. 종류는 또 어떤가. 갓김치는 20여년 전 여수 향일암 아래 슈퍼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맛 봤다. 톡 쏘는 맛과 향이 독특했다. 이젠 여수 하면 갓김치가 떠오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는 총각김치다.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를 뜨거운 밥과 먹으면 꿀맛이다. 라면 먹을 때도 최고다. 어느 날 친구가 총각김치가 왜 총각김치로 불리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왜 '총각'일까 궁금했다. 친구는 총각의 은밀한 부위와 모양이 닮아서라고 했다. 그으래?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건 리비도라고 주장한 프로이트가 무릎을 탁 칠 법하지 않은가. 총각김치를 먹을 때 아주 가끔 친구의 말이 생각나 키득거린다. 새곰새곰한 총각김치를 앙 베어 먹는다. 아삭!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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