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난 총각김치, 넌?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난 총각김치, 넌?

  • 승인 2020-12-02 10:30
  • 신문게재 2020-12-03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1155108493
게티이미지 제공
그때만 되면 늘 추웠다. 간혹 눈발도 날렸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송이를 쫓아다니는 아이들과 강아지만 신났다. 어른들은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일년 중 명절만큼 큰 대사를 치르는 시기다. 어린 내 눈엔 썩은 생선인데 엄마는 그걸 사골 고듯 푹푹 끓였다. 왜 썩은 생선을 먹어야 하는지 나로선 이해가 안됐다. 황새기젓(황석어젓)이란다. 엄마는 그걸 넣어야 김치가 맛있다고 했다. 황석어젓 끓는 냄새는 하루종일 온 집안에 진동했다. 보기엔 역겹지만 냄새는 그리 싫지 않았다. 구수한 냄새가 입맛을 다시게 할 정도였으니까. 엄마는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얼음장 같은 물에 전날 소금을 뿌려 절여 놓은 배추를 씻었다.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마당에 나가보면 머리를 감고 참빗으로 곱게 빗은 것처럼 숨죽은 배추가 채반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김장하는 날이다.

그 시절 시골에선 김장김치를 짠지라고 불렀다. 짜서 짠지라고 불렀을 것이다. 지금은 아주 좋아하지만 어릴 적 난 생김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김칫국 정도나 겨우 먹을까. 짠 건 딱 질색이었다. 30대 중반까지도 푹 익으면 그때서야 찌개나 국을 끓여 먹곤 했다. 짜지 않은 삼삼한 김치를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년 시절, 한 겨울 깊은 밤에 먹었던 동치미는 맛의 추억이다. 겨울이라 저녁을 일찍 먹은 탓에 배가 출출하기 마련이지만 딱히 먹을 건 없었다. 그러면 엄마는 동치미 무를 길쭉길쭉하게 썰어 큰 대접에 국물과 함께 가져온다. 식구마다 하나씩 들고 먹으면서 얼음이 뜬 새콤한 국물을 마시면 잠이 확 달아난다. 어떤 날엔 장독대 옹기에 쟁여놓은 홍시도 먹는다. 추운 겨울 최고의 군것질거리다. 문명화 되지 않은 겨울밤은 참 길었다.

중 3때 방영웅의 『분례기』를 처음 읽었다. 1967년 '창작과 비평'에 연재된 장편소설인데 그 후로 열 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소설의 무대는 충남 예산으로 60년대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삶을 질펀하게 그렸다. 걸쭉한 충청도 말과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성격, 그 중 노름꾼 석 서방의 딸로 뒷간에서 태어난 '똥례(糞禮)'의 불행한 삶이 강렬했다. 똥례는 허랑방탕한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밥 하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는 게 일이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남들 다하는 김장조차 못한 똥례네는 봄에 이웃 사람들에게 시어 터진 김치를 얻어다 먹는다. 밥상에 둘러앉아 신 김치를 쭉쭉 찢어 밥에 얹어 먹는 똥례네 식구들의 볼이 미어터진다. 내 입안에도 침이 고인다.

김치는 밥을 먹는 한국인에게 없어선 안 되는 음식이다. 돈가스 먹을 때도 김치가 나온다. 밥과 함께. 한국인의 유전자엔 김치에 대한 맛의 기억이 각인돼 있다. 지금 내가 먹는 음식들의 기원을 생각하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배추, 무라는 풀을(처음엔 그냥 풀이었겠지) 요리해 먹게 됐을까. 경험만큼 큰 선생도 없다. 김치는 재료가 다양하다. 굴, 생태, 낙지, 생새우, 황석어젓, 조기젓 등 지역 산물이 반영된다. 종류는 또 어떤가. 갓김치는 20여년 전 여수 향일암 아래 슈퍼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맛 봤다. 톡 쏘는 맛과 향이 독특했다. 이젠 여수 하면 갓김치가 떠오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는 총각김치다.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를 뜨거운 밥과 먹으면 꿀맛이다. 라면 먹을 때도 최고다. 어느 날 친구가 총각김치가 왜 총각김치로 불리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왜 '총각'일까 궁금했다. 친구는 총각의 은밀한 부위와 모양이 닮아서라고 했다. 그으래?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건 리비도라고 주장한 프로이트가 무릎을 탁 칠 법하지 않은가. 총각김치를 먹을 때 아주 가끔 친구의 말이 생각나 키득거린다. 새곰새곰한 총각김치를 앙 베어 먹는다. 아삭!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번주 대전 벚꽃 본격 개화…벚꽃 명소는?
  2. [尹 파면] 대통령실 세종 완전이전 당위성 커졌다
  3. [속보] 4·2재보선 충남도의원 당진 제2선거구 국힘 이해선 후보 당선
  4. '미니 지선' 4·2 재·보궐, 탄핵정국 충청 바닥민심 '가늠자'
  5. [속보] 4·2재보선 대전시의원 민주당 방진영 당선…득표율 47.17%
  1. [사설] 학교 '교실 CCTV 설치법' 신중해야
  2. 올해 글로컬대학 마지막 10곳 지정… 지역대 사활 건 도전
  3. 세종시 문화관광재단-홍익대 맞손...10대 관광코스 만든다
  4. 대전 중1 온라인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재시험 "정상 종료"… 2주 전 오류 원인은 미궁
  5. [사설] 광역형 비자 운영, 더 나은 방안도 찾길

헤드라인 뉴스


윤석열 대통령 전격 파면… 헌재 8명 만장일치 `인용`
[이슈] 청소년 비행 잡고 불법촬영 막아주는 대전자치경찰위 `과학치안`
[이슈] 청소년 비행 잡고 불법촬영 막아주는 대전자치경찰위 '과학치안'

"이곳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담배 피우지 마세요" 인적이 드문 골목이나 공원에서 청소년들이 음주와 흡연을 하며 비행을 저지를 때 인공지능(AI)이 부모님을 대신해 "하지 말라"고 훈계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대전 대덕구 중리동의 쌍청근린공원 일대에는 어른 대신 청소년들의 일탈과 비행을 막는 스마트 AI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영상카메라라는 '눈'을 통해 AI가 담배를 피우는 동작과 술병 형태, 음주하는 행위를 감지해 그만할 때까지 경고 음성을 내뱉는 것이다. 이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전자치경찰위원회가 과학기술업..

`결국 폐업`…1분기 충청권 건설업 폐업신고 17건
'결국 폐업'…1분기 충청권 건설업 폐업신고 17건

올해 1분기 폐업 신고를 한 종합건설업체가 160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이후 같은 분기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충청권 건설업체 폐업 신고 건수는 17곳으로 집계됐다. 3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종합건설업체의 폐업 신고 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모두 160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4년 1분기(134건)보다 약 12% 늘어난 수준이다. 1분기 기준으로 비교하면, 2020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최근 5년간 1분기 폐업 신고 건수는 ▲2024년 134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윤석열 대통령 파면에 기뻐하는 시민들 윤석열 대통령 파면에 기뻐하는 시민들

  • ‘윤석열을 만장일치로 파면하라’ ‘윤석열을 만장일치로 파면하라’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