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
1972년에 초연된 연극 <점퍼스(Jumpers)>에서 톰 스토파드(Tom Stoppard)는 "선거가 아니라 개표가 민주주의다"고 얄궂은 말을 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패배자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여 선거 결과를 정당화하는 시스템이다. 선거의 객관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은 미국의 명성을 훼손하는 행위이자 미래에 대한 우리의 기대 징후, 예컨대 미국의 선거를 넘어 여타 국가들에서도 이런 논란거리 선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조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국가에서 정당 지지자들은 규칙 위반이 아니라 상대 정당의 승리에서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위험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은 상대의 권력 장악을 막기 위해 더 강하게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 들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헌법기관, 자유언론 같은 공정 기관들은 정치 도구화에 빠질 위험도 없지 않다. 게다가 미국 선거는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과 손실이 국가적 통합과 집단적 목표로 이어지기보다는 기존의 균열 양상을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AP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신규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376개 카운티에서 93%라는 압도적 다수가 트럼프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의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로 들린다. 봉쇄가 길어지고 경제가 위축된다면, 우리 사회는 작금에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돈스런 혼란과 닮아 갈 수 있다.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분열 극복의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미국에서의 경험에 비추면, 민주 정치가 분열을 고착·악화시키지 말란 법도 없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선거에서 단순히 두 정당이 아니라 전쟁을 치루는 서로 다른 두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 전쟁은 단순히 트럼프의 패배로만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미국의 정치 전쟁에 담긴 또 다른 메시지는 한 나라의 인구구조가 정치에서 결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구조의 숫자가 바뀌면 권력은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어간다. 이른바 '민주적 내러티브(narrative)'는 오랫동안 선거의 승리는 유권자들의 심경변화에 좌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권자가 바뀌면 권력 관계도 뒤집힐 수 있다. 이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서구 민주주의에서 그랬듯이 집단적 선호가 강한 신세대가 성인이 될 때 발생한다. 거대 집단의 신생 유권자들이 정치적 담론을 재구성할 때도 그럴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실제로 보편적 참정권이 도입되었을 때나 대규모 이민자들이 몰려들었을 때부터 여러 국가들에서 나타났다. 조 바이든의 인상적인 선거결과는 유권자들의 심경변화에서보다는 애리조나, 조지아 같은 연방주들의 인구통계학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족주의 정당들이 자국에서 날로 늘어나는 이주민들의 선택을 경제적·문화적 위협이자 정치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자국에서 소수자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소수 민족들은 미국을 넘어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 포퓰리스트들의 주요 지지자들이다. 아무튼 민주당원이 백악관에 복귀했더라도 세계가 트럼프 이전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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