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미 차장 |
지난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불안이 만든 상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텼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앞서 고민했고,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의미 없는 시나리오를 짰다.
그러다 문득, 정전되듯 머리 속이 까맣게 멈출 때가 있다.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심의 경지인가, 두려움으로부터 나는 초연해진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량 초과. 내가 상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주는 그리 무한하지 않았다.
아빠가 아픈 뒤로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나 또한 불안에 잠겨있다가 겨우 깨어날 수 있는 건 '괜찮아질 거야'라고 토닥여주는 누군가의 위로 덕분이었다. 확실히 부정보다는 긍정적 상상이 나약한 정신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빠는 한 달하고 이틀 만에 중환자실에서 벗어났고, 하루하루 회복에 힘쓰고 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이동하기 위해 기다리던 그날, 오후 6시쯤 됐을까.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오열하는 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힘내. 힘내!" 의사 여섯 명이 환자 침대를 밀며 긴박하게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오열하면서도 멀어진 아들을 향해 힘내라고 외쳤다. 또다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내몰린 사람들. 그 아찔한 시간을 견뎌야 할 가족들의 마음에 불안이 비수처럼 꽂혔을 거다. 그 현장을 바라보며 시큰한 눈물이 맺힌 건 결코 나뿐이 아니었을 거다.
우연일지는 몰라도 요즘 생과 사와 관련된 경험을 의도치 않게 접하고 있다.
신간 도서로 온 여러 책 중 제목이 황당해 손이 갔던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는 세계 곳곳의 장례 문화를 소개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연한 삶의 태도를 고민케 했다. 산내 골령골을 주제로 한 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은 억울한 누명을 쓴 망자들을 위로하는 진혼굿이었고, 여러 날 고른 넷플릭스 '더크라운' 시즌1은 조지 6세의 죽음으로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된다.
장자는 기가 모이면 삶이 되고 흩어지면 죽음이라 했다. 철학자 스토아는 대지의 뜻에 귀 기울이고 죽음이 축제가 되도록 삶을 완성하라고 권한다. 그럼에도 나는 부처도 장자도 아니기에 죽음 앞에서 끝내 초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 달라진 삶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아직 사랑하는 것을 놓을 수 없다.
다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상상을 더해 나를 갉아먹지는 말아야겠다. 긍정적 상상, 기분 좋은 시크릿 효과를 기대하며 무심의 경지로 더디게 가야겠다. 아빠가 우리 곁에 있어서 고마운 아침이다. 아빠 덕분에 삶을 고민하는 철학자가 됐다.
이해미 경제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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