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그린다. 네발 달린 짐승, 사람 다리같이 그려 뻗정다리가 되기도 한다. 그림 배울 때 경험하는 일이다. 특징을 잘 잡아내지 못하거나 묘사력이 부족한 탓이다. 여지없이 이에 관련된 고사성어가 있다. 호랑이 그리려다 개를 그린다는 화호유구(畵虎類狗)다. 원래는 호랑이 그리다 이루지 못하면 개라도 그린다는 긍정적인 말에서 유래했다. 같지 않지만 비슷하게 되었다는, 고니 그리려다 오리 그린다는 각곡유목(刻鵠類鶩)과 같은 말이다. 서툰 솜씨로 흉내 내려다 죽도 밥도 안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가 하면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경우도 많다. 작심 삼 일 이거나 능력 부족 탓이다. 시작은 거창하였는데 끝을 맺지 못하거나 결과가 미미하게 된다. 이른바 용두사미(龍頭蛇尾)다.
글 쓸 때 언어 선택도 중요하지만 줄이고 줄여 쓴다. 그러함에도 쓰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사족이 그것이다. 화사첨족(畵蛇添足)의 준말이다. 뭔가 미흡하다고 느껴 추가하고자 할 때 '사족을 붙인다.' 하기도 한다. 고사를 전하는 책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어, 취합 요약하면 이렇다. 제사 지내고 음복하는데 술 양이 적었던 모양이다. 땅바닥에 뱀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마시기로 내기를 하였다. 한 사람이 뱀에게 있지도 않은 다리를 그리려다 늦어져, 내기에 지고 만다. 그림도 그르치고 일도 망쳤다. 곧,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도리어 그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긁어 부스럼이다. 안 해도 될 일을 공연히 건드려 화를 자초한다. 그와 일맥 상통하는 관용어도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하기도 한다.
예술에는 상상이 필요하다. 아방가르드(avant-garde), 인습과 고정관념 부수는 것이 창작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표현 욕구가 있다. 표출되는 결과에 정도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창작이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일상생활에 예술적 발로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무엇인가 염원하는 기복, 상호 교감을 위한 수단, 재미와 멋, 장식 등이다. 전문 작가가 관여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참여한다. 이러한 그림을 민화라 한다.
민화에는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각종 종교, 민속에 관계된 것이 많다. 도교와 민속적인 내용에는 장생도, 방위신, 십이지신, 호랑이, 까치, 호랑이와 같은 뜻을 지닌 닭·개·사자, 신선, 산신, 용왕 등이 있다. 불교 수용 뒤에는 탱화, 고승도, 설화도 등이 등장한다. 유교적인 것으로, 행실도와 같이 윤리 도덕을 강조한 그림 및 조상 숭배, 문자도가 있다.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그림도 다양하게 그려진다. 장식용으로는 회화에서 다루는 산수, 풍속, 인물, 화훼, 영모, 초충, 어해, 사군자 등 모든 분야 그림이 그려진다.
우리 무속이나 민속에 호랑이가 많이 등장한다. 단군신화부터 민담에도 단골이다. 산악과 호랑이 숭배, 산신 신앙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삿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수호신, 풍수에서는 서쪽을 지키는 방위신으로 등장한다. 길상(吉祥), 벽사(?邪) 의미로 까치 및 대나무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필자가 수집한 호랑이 속담만도 112가지나 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호랑이 잡는 포수는 호랑이만 잡고 꿩 잡는 포수는 꿩만 잡는다.' '용이 가는 데 구름 가고 범 가는 데 바람 간다', '호랑이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 '호랑이는 썩은 고기는 안 먹는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믿고 거드름을 피운다(狐假虎威)',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 등이다. 호랑이가 얼마나 우리와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대변해 준다.
그림은 우표에 등장했던 민화 호랑이이다. 포효하거나 공격적인 모습이 아니다. 보는 이에게 웃어보라고 어르는 듯하다. 어느 하나 사실과 가까운 것이 없다.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뒤편 나뭇가지에 까치가 앉아 지저귄다. 호랑이를 나무라는 모습이다. 반포지효(反哺之孝), 까치는 보은할 줄 아는 날 짐승이다. 호랑이가 아니면 어떠하랴. 삿된 것이 다가오다 배꼽 잡고 돌아설 판이다.
법에 예술적 상상이 필요한 것인가? 법 적용은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사법개혁이 이런 것인가? 불필요한 논쟁으로 세월만 낭비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곡학아세도 유분수지, 무법천지라는 느낌이다. 어떤 한 사람이 정하면 법이 되고, 그가 덮어씌우면 죄가 되는가? 개인이 좌지우지하거나 악용되어서야 법이라 할 수 있는가? 법이 이현령비현령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런 법이 만들어져도 안 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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