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세상에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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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세상에 이럴 수가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11-2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어허, 이렇게 예쁜 옹기단지가 쓰레기장에!'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번쩍번쩍 윤이 나고 예쁘장한, 까만 옹기단지 하나가 쓰레기 처리장에 버려진 것이 아닌가!

금산 추부 1층 연립주택 살고 있는 아주머니가 한동안 못 버린 사과박스며 빈 병, 깡통, 잡동사니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까맣게 빛나는 옹기단지에 시선이 끌렸다. 바짝 가서 살펴보니 뚜껑까지 있는, 윤이 나는 단지가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 단지는 자신이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빛나는 옹기단지를 요리조리 살피고 만져도 보며 단지 뚜껑도 열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빈 단지인 줄 알았는데 그 단지 속에는 고추장이 그득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들어보니 고추장이 들어 있어서인지 꽤 묵지근한 무게였다.

옹기단지도 고추장도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머니는 그걸 집으로 가져왔다.

고춧가루가 부족하여 고추장을 담지 못했는데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옹기단지 뚜껑을 열고 검열대에 오른 음식물처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더럽거나 비위생적인 것은 아닌지 손가락으로 찍어 맛에 간까지 보며 어느 한 가지도 놓치질 않았다. 아주 맛이 감칠 맛 나는 고추장이었다.

아주머니는 어쩐지 재수가 좋아 횡재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머니는 뜻하지 않은 횡재에 기분이 좋았던지 전에 않던 콧노래까지 부르며, 행주로 고추장 단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걸 정말 먹어도 되는 건지 다시 확인해 보는 듯했다. 안심이 됐는지 미소를 흘리며 고추장 맛에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왠지 윤이 나는 단지에 고맙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내용물부터 용기단지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허나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추장 표면엔 미세하게나마 흰 곰팡이가 피어 있고, 그 표면에 군물 같은 것이 약간 괴어 있는 것이었다. 시력 좋은 사람이나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여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마도 고추장을 버린 사람은 흰 곰팡이와 괴어 있는 군물 때문에 버린 것 같았다.

매년 고추장을 담아 먹어 본 경험이 있는 그 아주머니는 그걸 보는 순간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고추장은 담아서 뚜껑을 열어 놓고 통풍을 시키면서 햇볕을 충분히 쬐 주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좀 소홀히 된 것 같았다.

며칠 후 아주머니는 동리 부녀회 점심 먹는 자리에서 예쁜 옹기 단지 속의 고추장 이야기를 꺼냈다. 수다들 떠는 자리여서 너나 할 것 없이 입담 좋은 얘기가 오고 갔지만 어쩐 일인지 2층 다세대 연립 주택 아주머니만은 얼굴이 시무룩하고 걱정스러워 보이는 눈치였다.

고추장 얘기를 무심코 지나가려 했지만 예쁘고 까만 옹기단지에 들어 있는 고추장이라는 말에 2층 연립주택 아주머니는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 추석 명절 때 서울서 내려온 새 며느리한테 보낸 고추장 단지가 까맣고 빛나는 옹기단지였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2층 다세대 연립주택 아주머니는 심란하여 그냥 있기가 어려웠다. 제발 그것이 자기 새아기한테 보낸 고추장 옹기단지가 아니기를 바라는 굴뚝같은 마음이었다. 불안한 아주머니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는지 꼭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별미로 쑤어먹은 호박죽이 있기에 그걸 한 냄비 퍼들고 이웃집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머리를 써가며, 눈치 못 채도록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옹기단지 좀 볼 수 없느냐고 했다. 한참 너스레로 수다를 떨던 부인이 이게 바로 그 옹기단지라며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자신이 어렵게 구해다가 새 며느리한테 온갖 정성을 쏟아 고추장을 담아 주었던 그 빛나는 옹기단지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아주머니는 어안이 벙벙하여 낯빛이 변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지체했다간 숨기고 있는 모든 것이 다 들통 날 것 같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도망 나오다시피 했지만 눈치 빠른 그 부인이 감을 잡지 못할 리 없었다.

명절 끝난 뒤에는 고속도로 휴게소 쓰레기통엔 버리고 간 명절 음식물과 부식반찬류들로 폭주해서 그걸 치우는 관계자들이 고생하며 골머리를 앓는다는 예기가 세간에 떠돌더니…….

아니, 말로만 듣던 일이 유언비어나 헛소문이 아닌 현실이 될 줄이야!

2층 연립주택 아주머니는 자기가 쏟은 정성과 사랑이 모두 부질없는 거였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새어나오는 한숨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사랑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자리를, 빛바랜 그림자가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부족한 생각과 행동이 그 소중한 정성과 사랑을, 이렇게 허탈감 실망감으로 얼룩지게 하다니…….

참으로 야속할 정도 생각 없는 새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며느리와 아들을 위해서 추석명절 두 달 전부타 정성을 쏟아 고추장을 담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고추장에 맛을 내려고 좋은 재료의 양념이란 양념은 다 챙겨 넣고, 마늘까지 찧어 넣었던 자신이 바보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맘먹고 만들어 보낸 고추장이 쓰레기 처리장에 있다니 생각하기도 싫은, 기막힌 일이었다.

유별난 정성과 사랑이 까맣게 빛나는 고추장 옹기단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불결한 쓰레기 옆에 함께 있다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소중한 것이 일회용 폐기물로 처리되는 세상이라니…….

누구를 탓하고 원망해서 무엇하리요!

세상에 이럴 수가!

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하였기에, 그게 소문날까 쉬쉬하는 2층 연립주택 아주머니 !

재발제발 그 깜찍하고 예쁜 며느리가 지구촌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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