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순천과 역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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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순천과 역천

  • 승인 2020-11-25 15:35
  • 수정 2021-05-02 13:31
  • 신문게재 2020-11-26 18면
  • 강제일 기자강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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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政街)에선 백성과 하늘에 관련된 수사(修辭)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 백성을 하늘과 같이 섬긴다는 뜻인 이민위천(以民爲天) 같은 말을 정치인들은 입에 달고 쓴다.

절대적 가치의 대명사로 통하는 백성과 하늘에 빗대 자신의 정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200년 전 다산(茶山)도 백성과 하늘을 정치와 연관 지어 언급했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권력자들에게 "세상에 무서운 존재는 하늘이고, 이와 같은 수준으로 무서운 존재는 백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늘과 백성을 두려워 하라는 외천외민(畏天畏民) 경고를 위정자들에게 남겼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에게 백성과 하늘의 가치는 동일시 되고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치인들이 민의를 따르느냐 아니냐는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순천(順天)과 이를 거스르는 역천(逆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민의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을 챙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의의 전당인 국회는 순천과 역천 중 어느 쪽을 향하고 있을까.

여(與)든 야(野)든 스스로 순천으로 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듯하다. 여당은 정치, 검찰 등 분야에서의 각종 개혁, 야당은 문재인 정권 폭주 저지를 각각 순천의 이유로 대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에선 그렇지 않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을 앞세우는 날이 많으니 국회가 항시 순천을 실천한다고 보는 건 무리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딱 그렇다. 민주당은 공수처 출범으로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민의힘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당이 권력을 연장하고 비호 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비토(veto·거부)권 무력화를 위해 공수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총력 저지를 위해 국회 보이콧 카드까지 만지작 거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벌이고 있는 다툼도 마찬가지다 추 장관은 재판부 불법사찰,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을 이유로 현직 검찰 수장을 직무배제 시켰다. 윤 총장은 이에 맞서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에 여야는 또 충돌했다. 민주당은 윤 총장 협의가 충격적이라며 자진 사퇴를 압박하고 있고 야당은 장관이 직권남용 월권 무법으로 가로막고 있다고 핏대를 세우고 있다.

공수처와 추-윤 갈등을 고리로 여야가 으르렁대는 사이 민생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새해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어 걱정이다. 통상 여야 관계가 경색되면 심도 있는 예산안 심사는 요원하다. 556조 슈퍼예산을 뜯어보는데 여야가 머리를 맞대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여야 관계가 썰렁해지면서 올해도 '날림 심사'와 민원성 '쪽지 예산' 등이 횡행 할게 뻔하다.

충청권의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다.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 국립대전미술관 건립, 가로림만 해양정원 조성, 충청내륙고속화도로 건설 등 현안사업에 충분한 '실탄 확보'가 필수다. 하지만, 자칫 경색된 정국 탓에 여야의 원활한 지원사격을 받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의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째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러한 때 공수처와 추-윤 갈등 소식은 얼마나 국민에 공감을 살까. 단언컨대 노이즈나 다름없다. 벼랑 끝 민생을 챙기려면 정치권이 제3차 재난지원금이나 일자리 확충과 관련된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 여야는 역천의 길을 가지 말라.
<강제일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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