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
이런 와중에도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는 연구는 멈출 수 없었기에 일부 과학자들은 실험실에 나와 대 바이러스 전쟁의 최전선에 섰다. 이분들 덕분에 인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고 덕분에 더욱 정교한 방역 정책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백신 개발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는 이에 대처하는 과학자의 역할과 과학의 가치를 돌아보게 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이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과학자들이 인류의 위기를 외면하고 문 닫힌 연구소에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돈이 되는 연구만 하고 있었거나 업무 시간에만 연구하는 데 길들어져 있었다면 아마도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감염되고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냈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재판과 마주했을 것이다.
팬데믹은 논박을 거듭하며 진리로 접근해가는 과학적 절차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마스크의 효용에 대해 서로 엇갈린 의견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마스크를 쓰라고 했고, 미국에서는 환자가 아니면 쓸 필요가 없다고 해서 필자도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연구한 끝에야 과학계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결론에 수렴했다. 마스크의 효용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때때로 우리 언론은 과학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묘사하고, 정부 정책은 과학자를 지적 노동자 정도로 취급하곤 한다.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실상 과학은 당장은 실용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고 과학자는 남보다 먼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밤낮을 잊기 일쑤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차고 넘친다.
중력과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킵 쏜 교수는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백 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를 최초로 검출하는데 사용한 라이고 연구시설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인류는 그동안 상상만 했던 블랙홀의 모습을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최초로 촬영할 수 있었다. 해상도가 낮은 한 장의 블랙홀 사진을 보고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표현한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 영화적 상상력에 놀란 사람도 많다. 알고 보면 영화의 블랙홀은 킵 쏜 교수가 계산한 결과를 사용해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중력과 블랙홀은 돈이 되는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학문이리라. 그러나 과학은 이렇게 인류의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도 기여한다.
이번 팬데믹에서 드러났듯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과학이 인류의 실존적인 문제에 해답을 줄 때가 있다. 천문학의 발전이 없었으면 다음에 지구에 떨어질 운석에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망원경으로 블랙홀 대신 운석을 미리 발견할 수 있고, 관측 위성을 띄우기 위한 로켓을 쏘아 올려 운석의 궤도를 바꿀 수 있게 됐다. 아무 저항도 못하고 멸종을 맞이한 공룡과 달리 인류는 과학을 통해 답을 찾을 것이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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