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김치와 분업과 외주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김치와 분업과 외주

이동환 세무사

  • 승인 2020-11-22 09:37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이동환 세무사
이동환 세무사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제 2020년이 한 달 남짓 남아있는 요즘은 내년 한 해를 위한 김장철이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많이 변하여 사 먹는 집들도 많지만, 아직 집에서 직접 김장을 담그는 곳이 많다.

모르는 사람은 김치를 담그는 일이 단순히 배춧 속에 김치 양념을 넣으면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집집마다 나름의 비법이 있고 방식은 다르겠지만 일단 맛있고 건강한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는 필수적이다. 배추와 무, 배, 고춧가루, 파, 마늘, 젓갈 등등 기타 부수 재료가 꼼꼼히 준비돼 있어야 하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재료만 사놓는다고 끝이 아니다. 배추는 제때에 적당한 시간 소금물에 절여 놓아야 간이 베고, 무와 파, 마늘 등은 깨끗이 씻고 다듬고 갈고 잘라 준비한 다음 고춧가루와 젓갈, 소금 등과 함께 양념을 만들어야 한다. 투입되는 품이 다를 뿐 배추를 400포기를 하건 30포기를 하건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를 떠올려 보았는데, 하나는 분업이고 하나는 외주다. 필자는 올해 30포기 정도만 담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는데 사무실 직원 한 분은 가족들이 한데 모여 400포기를 담근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포기하고 싶은 숫자지만, 매년 무사 귀환하는 직원을 보면서 복귀를 환영하면서도 분업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분업은 아담스미스 국부론 1편 1장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물론 국부론이 무엇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얘기지만, 김장에 적용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책에는 소규모 제조업으로 핀 제조업이 언급돼 있다.

핀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사를 늘리고, 펴고, 자르고, 끝을 뾰족하게 만들고, 반대쪽 끝에 핀 머리를 붙여야 한다. 핀 머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두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를 한사람이 모든 과정을 순서대로 거쳐 핀을 만든다면 하루 종일 일을 하더라도 20개를 만들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각각의 단계마다 인원을 배치하고 각각의 조작을 숙련시켜 10명이 이를 만든 결과 하루에 48,000개 이상의 핀을 만들 수 있다. 240배 이상 효율적으로 일한 것이다. 분업의 효과는 여기에 있다. 여러 명이 모여 단계를 나눠 일을 한다면 위 업무숙련도, 업무 사이 시간 절약, 각 업무에 필요한 적절한 도구의 활용 등이 효율을 만들어 낸다. 30포기를 4명이 이틀 동안 했는데, 400포기를 10명이 3일간 끝마쳤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김장은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과정, 무를 채 썰고 양념을 버무리는 과정 등 단계가 나눌 수는 있지만, 배추를 절인 후 양념을 버무려야 하기에 누구는 배추를 절이기만 하고 누구는 양념을 버무리기만 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매일 김치를 담근다면 충분히 단계별로 숙련자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집에서는 1년에 한두 번 김장을 하므로 김장 단계별 숙련자가 나오기는 어렵다.

결국 이러한 숙련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은 '김치 공장'이 되겠다. 만약 가정에서 하는 것처럼 좋은 재료와 청결한 공정을 신뢰할 수 있다면 집에서 직접 김장을 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 될 것이다. 실제로 김치 완제품을 사 먹는 것이나 김장을 담가 먹는 비용이 별반 차이가 나질 않는다. 원재료 가격이 비슷하다 해도 김치 공장에서는 분명 이러한 분업을 통해 얻는 효율로 추가 마진을 얻을 수 있어 사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이익이 된다. 비효율의 개선이며 이것이 '외주'의 효과다.

기업의 경영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수록 업무의 성과를 직원 개개인의 역량에 기대는 경향이 크다. 대표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거나, 대표는 영업만 하고 직원 한 명이 생산관리, 노무관리, 재무관리를 모두 처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매출은 영업이 만들지만, 이익은 시스템이 만든다. 작더라도 크게 생각하고 크더라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이동환 세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고]대한민국 지방 혁신 '대전충남특별시'
  2. 금강환경청, 자연 복원 현장서 생태체험 참여자 모집
  3. "방심하면 다쳐" 봄철부터 산악사고 증가… 대전서 5년간 구조건수만 829건
  4. [썰] 군기 잡는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5. 기후정책 질의에 1명만 답…대전 4·2 보궐선거 후보 2명은 '무심'
  1. 보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국가배상 판결 나와
  2.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새출발… 기관 정체성·비전 재정립
  3. 지명실 여사, 충남대에 3억원 장학금 기부 약속
  4. 재밌고 친근하게 대전교육 소식 알린다… 홍보지원단 '홍당무' 발대
  5. '선배 교사의 노하우 전수' 대전초등수석교사회 인턴교사 역량강화 연수

헤드라인 뉴스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펼쳐지는 첫 선거인 4·2 재·보궐 선거 날이 밝았다. 충청에선 충남 아산시장과 충남(당진2)·대전(유성2) 광역의원을 뽑아 '미니 지선'으로 불리는 가운데 탄핵정국 속 지역민들의 바닥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재·보궐에는 충남 아산시장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5명, 충남·대전 등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 교육감(부산) 1명 등 23명을 선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여야 간 진영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번 재·보궐 선거전은 탄핵 이슈가 주를 이뤘다. 재·보궐을 앞..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전원일치’이면 이유의 요지를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을 낭독한다. 헌법재판소의 실무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 명시된 선고 절차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주문 먼저 읽은 후에 다수와 소수 의견을 설명하는 게 관례지만, 선고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어 바뀔 수 있다. 선고 기일을 4일로 지정하면서 평결 내용의 보안을 위해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또는 선고 당일 최종 평결, 즉 주문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 평결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의견을..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이하 소호은행)이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국 최초의 소상공인 전문은행 역할을 지향하는 소호은행은 향후 대전에 본사를 둔 채 충청권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소호은행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KCD) 대표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소상공인, 대한민국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 3색의 봄 3색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