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사막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울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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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사막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울 순 없을까?

  • 승인 2020-11-19 11:37
  • 수정 2021-06-24 13:53
  • 신문게재 2020-11-20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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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구빈 서산 음암초 교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정상 등교하는 상황이 되면 잘 해봐야지' 했던 생각들도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우리 생활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은 바로 그 것. 코로나19와 관련된 이야기다.

필자는 교사로서, 학생들이 '즐거움'이라는 도구를 통해 수업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지향한다. 이러한 방법은, 어떤 학생이 필자에게 '선생님은 꿈이 개그맨이었어요?' 라고 묻기도 했을 만큼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변했다. 정말 많은 것들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모둠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고, 2m 이상의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것에 더해,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고 e학습터로 접속하는 날들이 흘러만 갔다. 그러다 다시 긴팔 옷을 꺼내는 계절이 돌아왔다. 그런데 문득,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 한번 즐겨보기로 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법한 걸 시작해보자. 누가 시키진 않았지만, 온라인 수업.

다양한 플랫폼 중, 절반의 학생들이 데스크탑 PC를 이용하고 있는 학급의 특성, e학습터와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이용하기로 결정. 나름 얼리어답터를 지향하며 살고는 있었지만, 대다수처럼 필자에게도 역시 유튜브는 단순히 '보는' 것이었을 뿐이다. 전혀 몰랐던 영역. 하나하나 배워가며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유튜브 정책 상, 웹캠을 이용한 스트리밍에 필요한 계정 인증에는 24시간이 걸린다. 택배를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었던 24시간 후, 주변 지인들과 학교 동료 선생님들을 모시고 한 테스트 방송은 그야말로 엉망진창. 채팅은 되지도 않고, 마이크는 교내 모든 잡음을 송출해주었으며, 설정 문제로 버퍼링은 10초마다 찾아왔다. 그렇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하나씩 꼬인 매듭을 풀어가며 드디어 9월 21일.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거 수업까지도 충분히 하겠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달랐다. 전교에 딱 1개 있는 익숙하지 않은 전자칠판과 씨름을 해야했고, 수업하는 동시에 채팅창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는 데에 서툴러 질문을 놓치기도 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후, e학습터 출석률을 살펴봤더니 이게 웬걸. 확신에 차게 되었다. 사실,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하기 전 우리 반의 아침 출석률은 계속 하향 곡선을 타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 거의 100%에 가깝게 올라가긴 했지만, 학생들의 생활 리듬이 깨져 가는 것은 나름의 큰 고민이었다.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한 날, 우리 반의 아침 출석률은 (물론 몇 명의 학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긴 하였지만) 정말 오랜만에 100%에 이르렀다. 아! 정말 해보길 잘했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황량하다. 교직원들의 취미활동은 올 스탑 상태이고, 친목 도모를 위한 다양한 소모임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로 인해 움츠려 있고 걱정만 하기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운 것을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부정적인 상황에 휩쓸리다 보면 결국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될 뿐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 보다, 그래도 뭔가 해보면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즉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 에너지'로 피워낼 수 있다면. 이는 평소의 즐거움보다 훨씬 더 소중해지지 않을까? 아늑한 식물원 화단 속 아름다운 한 송이 꽃보다, 황량한 사막에서 만나는 그저 그런 한 송이 꽃이 더 가치 있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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