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老(늙을 노)馬(말 마)之( ~의 관형격 조사)智(슬기 지, 지혜로울지)
출 전 : 한비자(韓非子) 설림상편(說林上篇)
비 유 : 경륜(經綸)에 의해 쌓인 지혜(智慧)가 세상살이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克服)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륜(年輪)이 깊으면 나름의 지혜와 장점과 특기가 있다.
늙음은 모든 일에 소용없는 퇴물이며 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늙은이의 지혜를 잘 끌어내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환공(桓公)을 도와 제(齊)나라를 패권국(覇權國)으로 일으킨 명재상 관중(管仲)과 늙은 말(馬)의 이야기가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재상(宰相) 관중과 대부(大夫)습붕(?朋)과 함께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한 일이 있었다. 봄에 출병하여 간단히 제압할 줄 알았던 소국(小國)과의 싸움이 의외로 길어져 그해 겨울에야 겨우 정벌을 끝내고 철수를 시작했다.
그런데 겨울의 눈(雪)과 혹한 때문에 귀국을 서두른 결과 병사들은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되었다. 이때 관중이 나서 안심시켰다.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 그들이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관중은 말(馬)의 무리 중에 늙은 말을 찾아 그를 놓아주고 행군대열의 맨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게 하였다. 그러자 앞장세운 말이 정확하게 봄에 왔던 길을 찾아 갔기 때문에 무사히 회군(回軍)할 수 있었다.(乃放老馬而隨之,遂得道行.)
또 한 번은 산길을 행군하다 식수가 떨어져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엔 습붕(?朋)이 나섰다. "개미는 겨울철엔 산 남쪽 양지에 집을 짓고 산다. 흙 쌓인 개미집 땅 속을 파면 일곱 자쯤 되는 곳에 틀림없이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개미집을 찾아 파 내려가니 과연 물이 나와 갈증을 벗어났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소개하면서 "지혜로운 관중과 습붕도 알지 못하는 일에 봉착해서는 늙은 말과 개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은 성인의 지혜도 본받을 줄 모른다"라고 개탄했다.
지식(知識)과 지혜(智慧)는 다르다. 지(知)에 오랜 경험의 세월(日)이 쌓여 슬기의 지(智)가 된다.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교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조선 선조(宣祖) 때 고상안(高尙顔) 선생의 효빈잡기하편(效嚬雜記下篇) 여화(餘話)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늙은 쥐 한 마리가 있었다. 이 쥐는 먹을 것을 훔치는 데는 귀신같았다. 그러나 늙어서 눈이 침침해지고 기력이 떨어져 나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쥐들이 그에게 가서 먹을 것을 훔치는 법을 배우고 그 대가로 훔쳐온 먹을 것을 그에게 나누어 주어 공생(共生) 하였다.
이렇게 얼마간 지나자 쥐들은 마침내 늙은 쥐의 술수를 다 배웠다고 여기고 다시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이에 늙은 쥐는 분을 품은 채 지냈다.
어느 날 저녁, 시골 아낙네가 밥을 지어놓고 돌로 솥뚜껑을 눌러놓은 채 이웃으로 마실을 나갔다. 여러 쥐들은 밥을 훔쳐 먹으려고 갖은 꾀를 다 부렸으나, 돌로 덮어 놓은 솥뚜껑을 열 수가 없어 밥을 훔쳐낼 방도가 없었다.
어떤 쥐가 말했다. "늙은 쥐에게 방법을 물어보자." 다른 쥐들도 모두 그게 좋겠다고 하여 일제히 늙은 쥐에게 몰려가서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늙은 쥐는 노기(怒氣)를 띠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내게 방법을 배워서 항상 배부르게 먹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나는 가르쳐 주고 싶지 않다."
쥐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면서 사정하였다. "저희들이 참으로 잘못하였습니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잘 모시겠으니, 부디 밥을 훔쳐낼 방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늙은 쥐는 이렇게 일러 주었다. "솥에는 발이 세 개 있다. 그 중 발 하나가 놓인 곳을 파내면 조금만 파도 솥이 기울어져서 저절로 뚜껑이 열릴 것이다."
여러 쥐들은 달려가서 땅을 파냈다. 그러자 과연 늙은 쥐의 말 대로 솥뚜껑이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쥐들은 배부르게 실컷 먹은 다음 남은 밥을 싸가지고 와서 늙은 쥐에게 바쳤다.
작금 우리사회는 경륜(經綸)이 상당한 이른바 보수(保守)세력과 새로운 경험을 토대로 한 진보(進步)세력간의 갈등(葛藤)이 도를 넘어 정치권에서는 사활을 건 투쟁으로 이어져 국정처리가 항상 시끄럽다. 이럴 때 경험과 연륜이 높은 원로(元老)들의 고문(顧問)이 필요한데 이 마저도 시행이 안 되고 자기 위주로 판단하여 모든 것을 거부하고 양보는 없다.
조선 중반 실학사상의 태두인 성호(星湖)이익(李瀷) 선생의 말씀 가운데,
"헤매면서도 묻지 않는 것을 고집스럽다고 하고, 자신을 뽐내며 남에게 굽히지 않는 것을 쩨쩨하다. 하고, 잘 이끌어 주는데도 따르지 않는 것을 꽉 막혔다고 한다.
이 세 가지는 스스로 진보할 수 없는 경우로 현명한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迷而不詢謂之頑, 矜而不屈謂之吝, 善導而不遵謂之窒, 三者皆無以自進以明者不爲(미이불순위지완, 긍이불굴위지린, 선도이불준위지질, 삼자개무이자진이명자불위)]
신세대의 새로운 학설과 이론도 중요하지만 60년 이상을 살아 넘치는 경륜이 이 혼란한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이 될 것이다.
이제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늙은 말(老馬)의 올바른 길잡이 역할을 큰 교훈으로 삼아 이 치유하기 힘든 사회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함은 물론, 분열이 봉합되고, 싸움 없는 국정운영을 기대하는 대다수 국민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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