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고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그땐 팝송이 트렌드여서 팝송 관련 프로가 많았다. 김광한 팝칼럼니스트가 외국 가수들의 뮤지비디오와 공연 실황 중계를 많이 소개했다. 사이몬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도 그때 봤는데 인상적이었다. 센트럴 파크에서 공연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관객이 많았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가펑클의 섬세한 미성. '그대 삶에 지치고 왜소하게 느껴질 때, 당신의 눈가에 눈물이 고일 때, 내가 닦아 드릴게요. 내가 그대 곁에 있어 줄게요...' 뭔가 심오하고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철학적인 가사가 기존의 노랫말과 달랐다. 시적인 가사가 가슴을 울렸다. 이 노래에 대한 대중의 평균적인 시각과 다르게 나는 다른 이미지로 가슴이 쿵 했다. 가펑클의 제스처가 어린 나로선 생소하고 문화 충격이었다. 노래하면서 한 손은 마이크를 쥐고 한 손은 청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노래하는 게 아닌가. 무대에서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뭔가 자유롭고 건방져 보이기도 했다. 유교문화가 완고한 우리 사회에서 예의에 벗어난 것 같기도 했다. 난 그 모습이 아주 새로웠다. 아, 역시 저들의 수준은 다르구나. 사대주의 발상인가?
'오! 모든 게 너무 힘들고 주위에 친구도 없을때 거친 물결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그대 위해 내 몸을 눕힐게요...거친 물결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내가 그대 마음 편하게 해 드릴게요.' 오늘 아침 출근 준비 중에 뉴스를 봤는데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겪는 인권 유린과 피해에 대해 나왔다. 그 사이에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노무사를 인터뷰하는 장면도 있었다. 며칠 깎지 않아 듬성듬성 난 수염과 다소 피로해 보이는 안색, 그렇지만 눈빛은 따뜻하고 형형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성이 나온다. 잇속을 챙기는 영리한 사람은 권력자의 편에 서서 일신의 안위를 꿈꾼다. 이 세상은 돈이 전부인 더러운 세상이 돼버렸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으로 이런 조짐은 더 강화된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벼랑으로 내몰린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노무사를 보며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부끄럽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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