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애국 충절도 절감하는 것이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 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가슴 뭉클하게 파고드는 아픔이었다.
안중근 의사 모친인 조 마리아 여사의 가슴 뭉클한 편지를 소개해 본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먹지 말고 죽어라! 아마도 이것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채포된 아들 안중근에게 어머니가 보낸 편지이다. 31살의 나이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아들 안중근 의사한테 어머니 조마리아가 보낸 마지막 편지지만 조국을 위해 소중한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의 의연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픔으로 가슴을 찌른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서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보내는 어머니의 냉철함과 참된 용기에 머리가 숙여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 모친의 정신 - 자신보다는 국가를, 내 아들보다는 대한민족을 위하는, 애국애족의 희생 - 정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마음을 본받았으면 한다.
세상의 대다수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큰 인물이 되기를 원하고, 그 아들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처럼,
큰 것을 위해 소중한 하나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훌륭하게 사셨던 안중근 의사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염일방일(拈一放一)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이 말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손에 하나를 쥐고, 또 하나를 잡으려 한다면 두 개 모두를 잃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일의 결정적 상황에서 안중근 의사 모친처럼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소중한 다른 하나를 버릴 수도 있는, 참된 용기와 슬기가 있어야 한다.
아들도 소중하지만 더 소중한 국가를 위해 자신의 아들 안중근을 놓을 줄도 알았던 조 마리아의 참된 정신이 우리 마음속에도 살아 있어야 한다.
소중한 둘을 챙기려는 욕심은 그 모두를 잃게 한다. 욕심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선 소중한 것도 버릴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약 1천 년 전 중국 송나라 때의 일이다. 한 아이가 커다란 장독대 항아리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 가져와라 요란 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숨이 넘어갈, 죽기 직전이었다.
그 때 어린 꼬마 사마광이 옆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들고 그 커다란 장독대 항아리를 깨뜨려 버렸다.
계산적인 어른들의 잔머리로 항아리 값, 물 값, 책임소재를 따지며 시간 낭비를 하다가 정작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잃을 뻔했는데 사마광이라는 어린이가 장독대 항아리를 돌로 쳐서 깨뜨리는 바람에 아이를 살린 것이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가 염일방일(拈一放一) 고사성어인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더 귀한 것을 얻으려면 소중한 다른 하나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욕심이 너무 많다. 자신이 의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이루려는 생각으로 모든 면에서 더하는 덧셈법으로만 살려 한다.
아니, 곱셈법으로, 숫자를 늘리는 것에만 골똘하고 있다.
이런 식의 셈법으로 살다간 정작 중요한 것을 다 놓치고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음속에 정작 돌로 깨부숴야 할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욕심은 뺄셈과 나눗셈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후환이 없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 따라 사마광의 지혜와 조마리아의 세상을 사는 셈법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를 놓친다.
이런 속담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도 같다.
큰 것을 위해 소중한 하나를 버릴 줄도 알아야!
나는 덧셈, 곱셈의 셈법으로 욕심만을 앞세우는 건 아닌지 진맥해 볼 일이다.
내가 사는 셈법은 덧셈, 뺄셈법 그 어느 쪽인지 가슴에 손을 얹어 볼 일이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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