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초등학교 교사 김영태 |
그래서인지 이 밝은 학생이 유독 수학 시간만 되면 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이었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더하기와 빼기부터 다시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기로 우리는 결심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방과 후에 부족한 공부를 지도했고, 매일 숙제도 내줬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거나 힘들 때도 있었겠지만, 참 고맙게도 Y는 최선을 다해줬다.
몇 달이 지나 지금 현재, Y는 6학년 수학 공부를 어려움 없이 척척 잘 해내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서서히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기특하다.
나의 교직 생활도 마치 Y의 수학 공부처럼 늦게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다 보니 친구들보다 군대도 늦었고, 대학도 늦고, 직장생활도 늦게 시작했다.
그래서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의 의미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고, 뛰어난 교사는 못 되더라도 열심히 하는 교사는 꼭 되겠다는 다짐 속에 지금까지 지내온 것 같다.
느리고 서툰 초임 학교에서는 모든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수업, 생활지도, 업무처리, 학부모 상담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내가 하는 수업 방법이 과연 맞는 것인지, 학급운영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점도 많이 생겼었다.
업무처리도 빠르지 못해서 밤늦게까지 밀린 업무를 처리했던 적도 많았다. 힘들었던 초임 시절을 그래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늘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동료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특히 발령 첫해 학년 부장님의 세세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은 초기 교직 생활 적응에 아주 큰 힘이 됐다.
처음으로 학교를 이동해 근무하게 된 두 번째 학교에서 나는 인생에 있어 더욱 큰 전환점을 맞게 됐다.
바로 결혼이었다. "뭐, 적절한 때가 되면 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결혼문제를 누구보다 걱정해준 사람은 바로 교장선생님이었다.
"한 살이라도 더 늦기 전에 빨리 가야지"라고 늘 관심 어린 걱정을 보내주시던 교장선생님께 나는 "인연이 닿는 사람이 생기면 가겠죠"라며 멋쩍은 웃음으로 늘 얼버무렸다. 이런 나의 안일함 때문이었는지 교장선생님께서는 당신만의 특단의 조치를 내리신 듯했다. 인맥을 총동원해 나의 미래 신부가 될 사람을 열심히 찾아주셨고, 얼마 후 나는 착하고 예쁜 고등학교 영어선생님과 처음 만나게 됐다.
이후 우리는 연애의 기간을 거쳐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 다른 부부들처럼 의견충돌로 다툴 때도 있지만, 알콩달콩 재미있는 신혼을 보내고 있다.
혼기가 꽉 찬 막내아들을 보며 늘 걱정이 많으셨던 우리 어머니께서는 교장선생님을 일컬어 내 인생의 '은인이자 귀인'이라고 하셨다.
지금은 학교를 떠나 교육청에서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시는 와중에도 "2세 소식은 아직 없느냐"며 애정 어린 관심을 늘 보내주고 계신다.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늦는 것은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자신을 자책하며 재수학원가를 방황하던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항상 더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신을 경주마처럼 채찍질하던 당시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영태야, 좀 늦어도 괜찮아. 빨리 가는 것보다 올바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 넌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문지초등학교 김영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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