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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춘순 판사 |
과연 옳은 양형일까?
실형은 음주운전을 되풀이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지만, 직장 등 기존의 생활기반을 잃게 할 수 있고 가족의 생계를 위협한다. 핵가족 시대인 지금 이혼하고 홀로 자녀들을 양육하는 가장이 음주운전을 한 경우 재범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음주운전은 술에 취해 이성적 판단능력이 부족해진 상태에서 마치 습관처럼 되풀이되는 특성이 있다. 벌금형을 받고도 또다시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 벌금형보다도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 형벌의 엄중함을 체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술에 취했을 때 대리기사가 빨리 오지 않는다거나, 가까운 거리라면서 또는 비가 오는 날에는 단속이 없다는 등의 핑계로 또다시 핸들을 잡을 위험이 있다. 법정에서 다시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눈물로 맹세했지만, 그 나중에 맨정신이 아닐 때도 그러할지는 자신조차 알 수 없다.
"판사님, 저희끼리 잘 살 수 있어요. 아빠를 감옥에 보내주세요"
2009년 고정사건(벌금을 고지하는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을 전담하고 있을 때의 어느 날, 봉투에 "000 판사님께"라고 적힌 편지가 개봉돼 검열을 통과하고 관련사건 번호가 적힌 메모지가 붙여져 사무실 책상 위에 배달됐다.
관련 사건은 음주운전죄로 약식명령을 받고 벌금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안이었고, 편지는 피고인의 딸(초등 3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이 아빠 모르게 일반우편으로 보내온 것이었다. 피고인은 이혼하고 일용노동을 하면서 혼자 어린 두 딸을 양육하고 있는 아버지였고, 큰딸이 보내온 편지 내용은 이랬다.
아빠가 거의 날마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는데 사고로 돌아가실까 너무 무섭고, 법원에서 온 서류(약식명령)를 아빠에게 주면서 감옥에 가는 거냐고 울었는데, 아빠는 너희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판사님께 말하면 감옥에 보내지 못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생과 함께 잘 살 수 있으니 아빠를 감옥에 보내서 다시는 음주운전을 하지 못하게 혼내달라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먹먹해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어두었지만, 당시는 고정사건(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없는 형사재판)만 담당하던 때라 피고인의 가정상황으로 참고할 뿐이었다. 이후 10년이 더 지나 고단사건(징역형도 선고할 수 있는 형사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지금은 판결을 선고할 때마다 생각이 나고, 음주운전을 한 피고인에게 자녀들의 생계를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 자칫 실형선고로 예방할 수도 있는 처참한 사고를 방임하는 것은 아닐지 거듭 반문하게 한다.
'형벌'은 엄해야 할 때 엄해야 하고, 판사는 엄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해 엄한 형벌을 과할 수 있어야 한다. 음주운전과 같이 되풀이되는 범죄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근래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서 음주운전에 대한 법정형은 빠르게 높아졌고, 2019년 6월 25일부터는 두 번째 음주운전을 하면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상향됐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그만큼 높아졌고, 반복되는 음주운전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피고인의 안타까운 사정에 약해지지 말아야 하는 판사의 책무도 그만큼 상향조정 된 것이다.
오늘도 안타까운 사정을 적은 반성문을 거의 매일 제출하면서 실형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하는 피고인에게 굳은 마음으로 판사의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편지의 사진은 몇 차례 휴대폰을 바꾸면서 사라져 버렸지만, 그 내용이 마음속에 남아있어 피고인이 감옥에서 고생하고 그동안 자녀들의 생계가 어려울지라도 그것이 더 바람직한 형일 수 있다고 조금은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반성문이 준 무거운 마음은 내상처럼 그대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푸념 같지만, 음주운전죄에 대해선 특별히 ‘반(半)실형’ 제도가 마련되고, 술 냄새가 나면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전자장치 부착명령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낮에 사회에서 일하고 감옥으로 퇴근하게 할 수 있다면, 음주운전도 막고 자녀들의 생계 걱정도 줄어들 것이며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로 어떻게 음주운전을 하겠는가 말이다.
/고춘순 청주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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