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산성 안쪽 1차 성벽(사진 왼쪽)과 바깥쪽 2차 성벽모습./세종시 제공 |
이성(李城)은 세종시 제4호 지정 기념물로,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가 성을 쌓고 살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세종시와 한성문화재연구원은 이성산성 정상부 일대와 동벽 구간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굴조사 결과를 지난 6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성은 백제가 처음 축조했지만 이후 신라에 의해 점령됐고, 성벽은 최소 2차례 이상 고쳐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성곽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던 이성의 구조와 양상을 확인했으며, 동벽 안쪽 다짐층에서 백제 토기와 깨진 기왓장 등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볼 때 이성을 처음 축조한 국가는 백제로 추정된다.
정상부 일대에서는 6∼7세기 백제와 신라 유물들이 다양하게 출토돼 세종시 일대를 두고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정상부 첫 성벽 축조 이후 점차 바깥쪽으로 증축하면서 현재 규모까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바깥쪽 성벽이 이도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깥쪽 성벽의 높이는 약 8m 정도로 높게 쌓았으며, 지형에 따라 사용된 성돌의 크기와 형태가 다르게 조성됐다.
이성산성 정상부 1단 평탄지(사진 왼쪽)과 4단 평탄지 모습. /세종시 제공 |
가장 아래쪽 1단은 다각 건물지, 2단은 저장시설, 3단은 지하저수시설, 가장 위 4단은 장대지(군사지휘부)로 각각의 용도에 맞게 면적을 달리해 조성했다.
이는 위계에 따른 공간 구분으로, 이성 산성의 축조가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또한, 동벽 주변에서 성문에 사용된 철제 못이 여러 개 발견돼 동문지(東門址)가 있었을 것으로 유추되며, 서쪽의 평탄지는 오늘날의 군대 연병장처럼 당시 군사훈련을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정보 한밭대 명예교수(고고학자)는 "그동안 이성산성의 축조 시기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다"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축성도 백제이고, 출토된 유물도 백제와 연관되는 등 축성 시기가 맞물려 들어가는 것을 밝힌 조사"라고 설명했다.
이성산성 출토 유물. /세종시 제공 |
세종시는 앞으로 연차별 발굴조사를 통해 지역 내 삼국시대 산성의 특징과 역사성을 밝혀 나갈 방침이다.
이칠복 관광문화재과장은 "이성은 삼국시대 격전지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며 "향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을 추진해 복원·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종시와 함께 시굴조사를 한 한성문화재연구원은 우리 문화재의 조사, 연구, 보호 및 활용을 통해 민족문화를 전승하고 학술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2015년에 설립됐다. 매장문화재전문기관으로 현재 ‘문화재 지표·발굴조사’, ‘문화재보존을 위한 정비·활용’, ‘전통문화·문화재 자문·위탁 학술연구’, ‘학술세미나·행사 개최·지원’, ‘일반인을 위한 사회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중이다.
세종=고미선 기자 misuny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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