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일상의 깨우침, '산승보납도(山僧補衲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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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일상의 깨우침, '산승보납도(山僧補衲圖)'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11-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된 여타분야와 다르지 않게 공연예술계도 찬바람이 거세다. 방송에서조차 중단 내지는 폐지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다 보니 예술인 설 자리가 거의 없다. 살아남기 위한 모습이 방송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던 차에 전해진 박지선 비보, 연예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온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재조명케 하고, 예술인위상을 돌아보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고 박지선은 2007년 KBS로 데뷔한 이래, 예능뿐 아니라 전방위로 출연하며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웃음으로 세상을 위무함은 물론, 남을 배려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따뜻한 인간미가 애도하는 사람을 더욱 슬프게 한다. 저리게 한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재치와 꾸밈없고 순수한 말맛만으로 재미를 줄 수 있는 보기 드문 코미디언이라 하기도 한다.

8년간 고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대학생 글도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박지선은 얼굴도 모르고 누군지도 잘 몰랐던 저를 뒤에서 지원해주시겠다고 했다. 수도 없이 거절했지만 '학생이라면 공부를 하는 게 본분이며, 어느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는 게 사람이다'라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박지선은 제가 사람으로서 살아갈 이유를 깨닫게 해주셨고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 걸 깨우쳐주셨다." 우리 모두에게 꿈을 꾸게 하고 가꾸게 해준 것은 아닐까? 36년이란 짧은 인생 여정이 곱게 추억되기를 희망해 본다.

"배우는 거부 당하기 위해 헤맨다. 거부당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거부한다. (Actors search for rejection. If they don't get it they reject themselves)"



검은 중절모, 재밌는 콧수염, 몸에 꽉 끼는 재킷, 헐렁한 바지, 지팡이 든 떠돌이 모습의 캐릭터를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무성영화 시대 최고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Charlie Spencer Chaplin, 1989 ~ 1977, 미국 희극 배우)의 말이다. 배우뿐 아니라 모든 예술가에게 통용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누군가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다. 그 유지력은 거부로부터 다시 억압받는다. 어마어마한 고통이다. 그 고통이 작가의 숙명 아닐까? 필자같이 아픔에 무딘 사람에게서는 좋은 작품 기대하기가 어렵다. 진리 탐구나 창작이 문제의식, 왜라는 질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탐험가와 마찬가지다.

사유가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사유가 없으면 무뇌아라 일컫기도 한다. 무뇌증은 뇌가 생기지 않는 선천성기형이다. 사산되거나 태어나도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참 가혹한 말이다. 개념이 없다고도 한다. 따라서 죽음까지 부르는 고뇌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고뇌는 필요하지 않을까? 적절한 고뇌는 삶의 활력소가 아닐까? 몸과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 일상생활에서도 생각하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 있다. 공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진리와 공의를 향한 진솔한 사유이면 더 좋지 않을까?

불가에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이 있다. 좀 엉뚱하다. 디지털은 계량화가 명확하고 변함이 없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모든 것을 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인간 감각이 더 정밀하다. 예를 들어, 악기 조율하는데 디지털 측정기를 사용할 경우, 측정기가 12bit짜리이면 해상도가 4096이 된다. 그에 비해 사람 감각은 무한대이다. 훈련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말과 글 또한 모든 진리를 담지 못한다. 한계가 있다.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언어나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 방편은 될 수 있어도 실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를 일컬어 불립문자라 한다. 언설과 문자가 갖는 형식이나 틀에 빠지지 말라는 경계요, 나아가 경전이나 가르침에 집착하거나 관념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필자 같은 범인이 어찌 선의 심오한 세계를 알랴. 불가에서는 분별에 집착하는 세간의 지식은 무용하다 이른다. 무념무상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그 마음 조절이 참으로 어렵단다. 그런가 하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도가 있다 한다.

ㅎㅎㅎ
부산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110호,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 36.5×27.1㎝, 비단에 수묵담채
그림을 보자.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 조선 화가)이 그린 '산승보납도(山僧補衲圖)'이다. 산승이 굽은 소나무 등걸에 앉아 바느질하는 모습이다. 계류 옆에는 원숭이가 누어서 실을 늘어트리며 놀고 있다. '고씨화보(顧氏畵譜)'에 전하는 강은(姜隱)의 '보납도(補衲圖)' 방작이다. 등장하는 대상물은 대동소이 하지만 배치가 달라 느낌은 전혀 다르다. 특별한 수행이 아닌 일상에서 도를 구한다는 의미이다. 한땀 한땀에 의미가 있다. 불가에서는 달 보고 진리를 구한다는 대월(對月)과 함께 널리 회자 되는 내용이다.

심사정 역시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를 찾아 정진한 화가로 보인다. 동양에서는 보통 임화(臨畵)를 통해 그림을 배웠다. 대학시절 전공에 앞서 가장 먼저 산 책이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다. 중국 청나라 초 왕개, 왕시, 왕얼 3형제가 편찬한 목판인쇄 책이다. 크게 마음에 두지 않은 탓으로, 사만 놓았지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농담이 표시되지 않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기초는 물론 다양한 화풍과 화법을 배우도록 만들어진 양서임은 분명하다. 17세기 말에 조선에 들어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작으로 보아, 심사정은 '개자원화전' 뿐 아니라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 '고씨화보', '당시화보(唐詩畵譜)', '시여화보(詩餘畵譜)' 등 중국에서 출판된 화보를 두루 섭렵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이나 일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문득, 마음은 차치하고 자연이나 세상을 읽지 못하는 문맹은 아닐까? 불감증 환자는 아닐까? 자성케 된다.

양동길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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