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유치원'이라는 삶으로 연결된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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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유치원'이라는 삶으로 연결된 우리의 이야기

한지은 두루유치원 교사

  • 승인 2020-11-07 10:32
  • 수정 2021-06-24 13:53
  • 신문게재 2020-11-06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두루유치원-한지은
한지은 두루유치원 교사
올해 교사로서의 삶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처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혁신자치유치원에서의 처음, 3세 아이들을 만났다는 처음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교육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교육적 가치를 찾기 위해 시도한 수많은 처음…. 이 모든 것들이 6년 남짓한 교직 인생에서 마주한 처음이었고, 처음의 순간은 걱정되지만 설레게 그리고 불안하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삶으로 스며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교사로서의 영감을 주었던 처음은 3세 아이들을 만났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3세 아이들을 맡는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세 아이들을 떠올리면 교사가 모든 것을 해줘야 할 것 같았고, 교실은 항상 울음바다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세 아이들이야말로 거짓 없이 나다운 모습을 마음껏 표현하고, 누구보다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조금의 기다림과 도움이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유능함을 뽐낼 수 있는 정말 훌륭한 아이들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두루유치원은 혁신자치유치원으로 교육의 본질, 교육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 교육과정 주재자로서의 교사의 역할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걱정되기만 했던 3세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공동체가 함께 철학을 공유하고 경험을 나눔으로써 지정된 경로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항해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었고, 이러한 교육과정은 3세 아이들의 '나다움'과 '다양성'이라는 핵심가치를 중심으로 놀이를 통해 매일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이때 교사의 역할은 따스한 시선으로 아이들과 삶을 함께 살아가며 선생님의 존재 자체를 가르치는 것으로 이는 아이들의 삶 속에서 좋은 교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란 무엇일까? 좋은 교사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아이들로 귀결된다. 우리 반 이름은 '무지개반'인데 우리 무지개들은(내가 아이들에게 부르는 애칭이다) 반을 사랑하고 유치원의 모든 것이 신기한 호기심쟁이들이다. 이 호기심 가득한 무지개들과 빨갛고 동글동글한 산수유 열매를 만나게 되었다. 산수유를 따고 싶은 한 아이를 번쩍 안아 나무 근처로 올려주자 손끝에 닿을 듯 말 듯하다가 똑 따내었고, 산수유를 딴 아이의 눈은 뿌듯함과 설렘으로 빛이 났다. 이렇게 한 아이의 산수유 따기를 시작으로 힘을 합쳐 잔뜩 모은 산수유 열매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모임을 통해 생각을 나누었고, 말려서 차를 만들기로 하였다.



산수유 차를 만드는 과정은 험난했다. 나 또한 산수유 열매를 처음 봤기에 아이들과 함께 산수유 씨를 빼는 방법, 건조하는 방법 등을 함께 배웠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3일에 걸쳐 만들어진 건조된 산수유의 양이 많길래 아이들에게 "얘들아~ 우리가 먹기엔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며 제안을 해 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말랑공룡반에 나눠줘요!", "우리 형이 있는 반으로 나눠줄래요"라며 스스로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교사가 한 역할은 따스한 시선으로 산수유에 관심을 가진 아이의 눈빛을 읽어주고 산수유 따기를 도와준 것, 산수유가 아이의 삶과 연결될 수 있게 지시하는 것이 아닌 함께 알아간 것, 나눔의 가치를 스스로 실천할 수 있게 제안을 한 것뿐이었다. 그 외 모든 것은 오로지 아이들의 몫이었다. 얼마나 유능하고 사랑 가득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인가!

나답고 다채롭게 빛나는 아이들의 위대함과 교사의 세심한 시선과 따스함이 중요함을 알기에 다시 한번 아이들 앞에서 겸손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의 좋은 기운, 행복한 기운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우리 무지개들의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며….

/한지은 두루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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