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간첩사건은 1995년 10월 24일 부여군 석성면 정각사에 북에서 내려온 무장간첩 2명이 나타나 부여경찰과 32사단의 검거작전으로 간첩 1명을 생포하고 1명은 교전 중 사망했다.
작전 중에 부여경찰서 소속 나성주·장진희 경사가 간첩의 총에 맞아 순직했고, 동료 경찰은 어깨에 박힌 탄환을 14년 지난 2009년에서야 빼냈다. 또 다른 경찰은 총을 든 간첩과 몸싸움 끝에 생포하고 현재까지 지역경찰로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취재하면서 사건을 접한 이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다. 무장간첩이 나타난 곳이 왜 부여에 작은 사찰이었으며, 그곳에서는 어떤 작전이 전개되었던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자료도 찾아보고 수소문한 끝에 닿은 사람이 그다.
부여사건에서 남과 북이 전쟁을 종료하지 못하고 휴전 중이며 분단의 상처가 무엇인지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남은 가족은 상처를 가슴에 품은 채 우리 고장에서 거주하고 있다.
부여간첩 검거작전을 지휘한 그는 경찰충혼탑에서 그리고 부여 사찰에서 당시 상황을 기자에게 소상하게 설명해주었다. 더 늦기 전에 증언하고 기록하는 게 순직한 두 경찰에게 바치는 애도이자 자신이 수행할 의무라는 사명감까지 전해졌다. 대화는 막차 시간이 지나도록 이어져 그는 대전에서 하루 묵었고, 덕분에 그가 원고지에 연필로 쓴 기록을 꼼꼼히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기자도 그에게 약속했다. 우리고장 학생들이 당시 사건을 이해하고 남북분단을 고민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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