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록 노무사 |
특정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유사한 사유로 사망에 이르는 빈도가 높다는 건 분명 산업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택배 배송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이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택배 관련 노동조합은 공짜 노동을 그 이유로 꼽는다. 택배 노동자의 수입구조는 택배 배송 시 1건당 수수료가 책정되는데, 택배 분류작업 시에는 별도 비용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공짜 노동이라는 표현이 붙게 됐다.
택배의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가 자신이 배달할 구역의 짐을 구분해서 끄집어내는 작업을 말하는데, 이 작업을 완료해야만 택배 노동자들은 본인 담당 구역에 해당 물건을 배송할 수 있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분류작업은 택배 배송에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분류작업에 걸리는 시간이 약 평균 6~7시간에 해당하고 이것이 과로의 원인이 되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택배의 분류작업은 그날 업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된 택배를 싣고 배송을 나선다.
1일 8시간 기준 최저임금인 6만8720원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택배 노동자는 약 70건의 택배를 배송해야 한다. 택배 1건당 수수료가 800원에서 1000원 사이로 낮게 책정되기 때문에 많은 양을 배달해야 최저임금을 벌 수 있게 된다. 택배 1개 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약 10분으로 잡았을 때, 70개의 물량을 소화하려면 700분(약 11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차량의 이동, 주차, 도심에서의 교통혼잡 등을 고려하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며, 같은 지역에 많은 양을 배달할 때에는 줄어들 수도 있는 점은 배제하기로 한다.
추정치이긴 하나 택배 분류시간과 배송시간을 합하면 1일 최소 17~18시간을 택배 노동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5일 기준으로 환산해도 85시간이며, 6일 기준으로는 102시간 일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수치다. 근로시간은 아니지만, 아침, 점심, 저녁 시간, 사생활에 할애해야 할 시간 등을 고려한다면 1일 실제로 택배 노동자가 쉴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 거라 판단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상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21세기, 과도한 연장근로를 제한하고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공짜노동이슈가 나온다는 건 매우 참담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상대방인 택배업계의 항변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언론에서 확인되는 바에 의하면 택배 노동자들이 받는 택배 수수료에 택배 분류비용까지 포함돼 있다는 이야기가 확인된다. 다만 위에서 추측되는 것처럼 택배 노동자의 예상되는 노동시간 대비 금액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택배 분류비용이 포함돼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공짜 노동을 당했을 때는 갑질을 당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물류시스템이 택배 노동자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택배로 인해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분들에 대한 노동환경을 너무 도외시했던 건 아닌가 반성해 본다. 택배 배송비의 인상을 통해 택배 분류인력을 추가 채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택배 분류 자동화 시스템 등 물류시스템을 건강하게 구축해 택배 노동자들의 공짜 노동이 이른 시일 내에 사라지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김영록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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