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원장. |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부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유산 기부를 통한 기부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수영 회장은 이번 기부가 자신의 한평생 삶이 축약된 결정이라고 하면서 향후 카이스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시다가 2년 전인 81세에 법대 동창생과 결혼했는데, 이번 기부는 남편의 조언도 작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근대 모금역사에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여성 필란트로피스트들이 계신다.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민족의 앞날을 걱정해 교육과 문화 사업에 전 재산을 쾌척한 여성분들이다. 평양에 공회당을 세우신 백선행 여사, 도서관을 설립하신 김인정 여사, 신천 농민학교를 설립하신 왕재덕 여사 등이다. 이 외에도 일제강점기의 신문 등 자료를 조사해보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크고 작은 기부를 하신 여성분들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먼저 백선행 여사를 살펴보자. 20대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서 근검절약과 사업으로 평생 모은 재산을 평양 시내에 공회당인 백선행 기념관을 짓는데 모두 기부하셨다. 지금도 평양에 기념관이 있고 북한에서도 그 정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1933년 5월 백 여사 관련 동아일보 사설을 보면 "교육도 받은 일이 없고, 부모나 남편으로부터 유산도 받은 일이 없으며, 국가와 사회의 은혜를 받음도 없는 불쌍한 여인이 필생에 모은 30만원 재산을 전부 문화사업에 바치고 빈 몸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백선행 여사는 우리에게 지극히 귀한 교훈을 주는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80세에 돌아가시자 평양의 20개 단체가 주도해 사회장으로 모셨다고 한다.
또 다른 분은 일제 강점기 평양에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간도서관을 설립하신 김인정 여사다. 기생 출신으로 첩으로 고독한 반생을 보냈다고 한다. 어렵게 모은 재산을 조만식 선생의 권유를 받아 문화 보급을 위해서 기부했다. 1930년에 인정도서관을 착공하여 일 년 만에 개관했는데, 첫 일 년 동안 8만여 책이 대출됐고, 4만 7000여 명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람자 수가 늘자 1937년 3만원을 추가로 기부해 별관을 신축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고아원, 학교 등에 나머지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했다.
다음 소개할 분은 독립운동가 이승조의 모친이고, 안정근의 장모이신 왕재덕 여사다. 그런데 안정근은 안중근 의사의 동생이기도 하다. 29세에 남편이 사망해 홀로 됐다. 그러나 근면절제로 저축 생활을 이어가는 한편, 자신의 토지에서 경작한 벼를 진남포의 정미소에서 백미를 만들어 평양 등지의 도회지에다 출고함으로써 생산에서 소비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황무지를 개간해 농장을 만들어서 큰 재산을 축적했다. 그렇게 이룬 재산을 독립운동, 육영사업, 신천농민학교 설립, 교회, 빈민 구제에 내놓는 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듯이 우리 근대 역사에는 수많은 여성 분들이 개인과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부를 통해서 헌신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 이수영 회장께서 우리나라 여성 필란트로피스트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 주셨다.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올해는 코비드 19로 온 나라와 전 세계가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민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내 주위에 어려운 사람은 없는지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모두는 이수영 회장을 조금이라도 본받아서 적은 정성이나마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해 따뜻한 연말을 맞이해야겠다.
/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