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현 화백은 한평생 그림을 그리고 세계를 돌며 전시를 했지만 좀처럼 대전과의 인연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 아쉬움은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을 통해 하종현 화백의 생애 첫 대전 개인전이라는 화려한 이력으로 남길 수 있게 됐다.
중도일보는 제17회 이동훈미술상 본상 하종현 작가 특별전을 기념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온라인 좌담회를 진행했다. 앞서 보낸 질의서에 하종현 화백이 답변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최영근 이동훈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과 함께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사진=하종현문화재단 제공 |
▲최영근 이동훈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이동훈미술상'은 대전뿐 아니라 한국미술계에 큰 의미를 주고 있는데, 선생님의 수상과 작품 전시는 상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선생님은 1974년부터 마포를 이용해 캔버스 뒷면에서 안료를 밀어 넣는 이른바 '배압법'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만들어 냈다. 이는 선조들이 사용했던 회화기법을 통해 동양적인 정신으로 재 승화시킨 역발상이다. 진흙과 지푸라기를 배합해 바르는 흙벽, 삼베로 짜내는 한약의 진액 등 한국적 정서가 담긴 미의식도 보인다. 이는 어떻게 구현된 것인가.
▲하종현 화백: 내가 어렸을 적에는 전쟁을 겪었고,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온갖 궂은 일이라곤 가리지 않고 하던 그 시절은 지금 나에게 중요한 자산을 선사해준 배경이다. 고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캔버스를 살 돈이 없었다, 미술 작업을 꾸준히 하고자 미군 군량미를 담아 보내던 올이 굵고 거친 마대자루를 발견했고, 이를 값비싼 캔버스 대신 사용했다. 나이프로 물감을 마대 위에 펴 바른 다음 마대자루의 뒷면에 두꺼운 물감을 바르고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방식 등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 시절엔 구하기 쉬웠던 재료와 나의 주변의 흔한 것들, 예를 들어, 철조망, 신문, 마대천을 사용했고, 이러한 재료들과 작업방식이 제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미술에서 색은 곧 정신의 빛이며, 정신의 빛은 곧 색이다. 선생님께 색(色)은 어떤 의미인가.
▲하종현: 최근에 새로 '접합' 시리즈 작품에 도입했던 적색, 청색, 다홍색은 예를 들자면, 단청과 한국전통악기의 화려한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이외에 색감은 도자기나 고색창연한 기왓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강력한 물감으로 작품의 화면을 장악하게 했고, 이는 젊은 시절 무한대로 쏟아져 나왔던 에너지를 상상하며 작업 정신의 깊이를 다지려는 태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일상생활 곳곳마다 우러나오는 문화의 색을 표현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Conjunction 20-67,180x180cm,2020 |
▲최영근: 선생님께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로 국제 화단에서 한국 추상미술 단색화의 거장이다. 화업 초기 시절인 고뇌가 깊었을 것 같다.
▲하종현: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줄곧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추상적인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기존 회화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려고 보편적이지 않은 재료들과 작업 방식을 구축해오면서 작업 활동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추상으로 시작해 신문지, 스프링, 철조망 같은 소품들로 작업하기도 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다.
▲최영근: 그 시절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누구인가.
▲하종현: 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준 작가는 아무래도 늘 가깝게 뵐 수 있었던 故 김환기, 유영국, 한묵 교수님이다. 그분들의 작품세계와 열심히 작업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봐오며, 가르침 외에도 교수님들의 습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선승혜: 최 위원장님께서 영향을 받은 선배 세대를 이야기하셨으니, 저는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메시지를 여쭙고 싶다.
▲하종현: 내 작품의 흐름을 보면 경향의 변화가 많다.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다. 도전하고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좋은 작품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 활동을 위해서는 고통도 낙으로 삼아야 하고, 작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아픔을 견딜 준비가 돼야 한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작업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요즘은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서두를 것 없이 시간이 많이 있으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라고 말하고 싶다. 식상은 하지만 '한 우물을 파라'고 조언한다. 잠깐 파다가 물이 안 나온다며 다른 데 눈을 돌리면 평생 '진짜'를 못 찾게 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한 우물을 파게 되면 정말 좋은 물이 나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돌아보면 그동안 노력한 것들이 보람으로 다가올 것이기에 젊은 후학들에게 ‘파이팅’ 하시라 전하고 싶다.
conjunction74-26, 108,9 x 222,9 cm, 1974(MoMA 전시작품) |
▲하종현: 뉴욕 현대미술관은 확장공사를 마치고 재개관을 한 뒤에 소장품 전이 진행됐다. 대규모 전시로 세계 미술가들의 이목이 쏠려있는 이 전시에 작품이 전시되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큰 영광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접합(Conjunction 74-26)'은 1974년에 제작된 초기작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이외에 최근 몇 년 동안 LA, 파리, 런던, 뉴욕, 밀라노, 중국 등 해외 활동에 주력해 왔고 국내에선 4년 만인 2019년 부산 국제갤러리에서도 부산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수상 특별전도 대전에서의 첫 전시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재 런던 Almine Rech (알민레쉬)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하고 있다.
▲선승혜: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미를 전파하고 계신다. 국내외 미술애호가들이 '한국미의 정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변을 하시겠는가.
▲하종현: 한국미를 알고자 한다면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내 주변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한국이 아름답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친근하고 가까이하면 한국의 미를 비로소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선승혜: 생애 첫 대전전시다. 좀처럼 선생님의 작품을 접할 수 없었던 대전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하종현: 처음으로 갖는 대전 전시회는 내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고, 작품을 통해서 대전 시민들과도 가까워진 느낌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 힘든 시기에 작품 감상할 대전 시민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한다. 이번 대전시립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계기로 대전 시민들과 더 좋은 작품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정리=이해미 기자 ham7239@
탄생 67-1,2, 1967, 캔버스에 유채, 꼴라주, 200x300cm(2000 재재작) (이동훈미술상 본상 특별전 전시 작품) |
접합 17-96, 2017, 마포에 유채, 259X194cm (이동훈미술상 본상 특별전 전시 작품) |
최영근 이동훈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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