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만 배재대 교수 |
이 전시회는 인쇄언론에서부터 소셜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와 정치의 함수관계, 이를테면 루터와 인쇄술, 비스마르크의 언론정책과 마르크스와 '공산당선언' 팸플릿, 나폴레옹과 텔레그래프, 괴벨스가 선전도구화한 라디오방송, 케네디와 텔레비전, 그리고 디지털 여론, 즉 SNS가 사회 변화의 주역으로 자리한 21세기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이 갖는 범세계적 영향력에 이르기까지 극히 시사적인 미디어의 역할에 천착하고 있다. 언제나 미디어에 의해 움직인 억압과 해방이라는 대중여론의 구조변화의 지속성과 분열성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7년 대통령직 초기에 자신의 트윗을 통해 정기적으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는 '마녀사냥', '가짜뉴스', 'dumb business' 같은 것을 트윗했다. 언론은 그의 '파격적인'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민간하게 반응했다. 트윗의 의미도 대개는 모호했다. 예컨대 인터넷은 언젠가 트럼프의 메시지 끝에 등장하는 'Covfefe'란 개념에 열띤 반응을 보였다. 단순 철자 오류에 불과했지만 인터넷 밈(internet meme)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최초의 현대적인 미디어 스타는 누구였을까. 마르틴 루터가 아닐까. 16세기 종교개혁가 루터와 현직 미국 대통령 트럼프 모두 미디어의 파워를 인지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다.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로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현행 언론규칙을 무력화하는 길을 찾았다. 이 길을 통해 그는 '정치적인' 대통령이 아니라 '현대적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때는 1450년 무렵이다. 루터가 이 발명품의 부가가치를 인지한 때는 이후 70년이 지나서였다. 루터의 독일어판 신약성서는 역사상 최초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는 전단지와 팸플릿도 퍼트렸다. 이른바 '루터 브랜드'를 개발한 것이다. 이 전시회는 종교개혁을 '유럽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미디어 사건'으로, 루터를 '최초의 현대적인 미디어 스타'로 선언한 셈이다.
트위터가 시작된 때는 2006년이었지만, 정치인들이 그 유용성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신수단으로서 이것의 유용성을 깨닫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다. 뉴미디어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루터는 어떻게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입증하였다. 네트워크 방법이 인쇄술에서 디지털로 변화했을 뿐, 각 매체가 전파하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서 미디어는 부단히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한 셈이다.
이 전시회의 또 다른 도전은 인터넷 시대의 정의에 대한 물음이다. 인터넷 시대를 세 분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하나는 사용자가 결정을 조작할 수 있는 알고리즘의 효과에 관한 것이다. 전시회의 또 다른 하나는 방문객들에게 오늘날의 인터넷 역동성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끝으로 디지털 행동 인식과 사회적 평가를 통해 중국에서처럼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감시의 위험과 정치적 전체주의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이 전시회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구축 가능성을 통해 기후행동에 나선 세계 청소년의 연대모임인 'Fridays for Future'나 홍콩의 저항운동 같은 생태 운동을 찾아내거나 여론 조성이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소셜 미디어가 정치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터넷의 기술 능력과 소통 능력을 활용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느냐 하는 물음이지 트럼프와 구글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지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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