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막간이 선사하는 지혜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막간이 선사하는 지혜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10-26 08:06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종학 교수
우리는 어떤 일이 잠시 중단되거나 쉬는 동안을 뜻하는 말로 막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연극에서는 한 막이 끝나 막이 내린 뒤 다음 막이 오를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막간을 이용하여 배우들은 의상을 갈아입기도 하고, 연출가들은 무대를 점검한다. 또 관객은 어떤가? 잠시 숨을 고르면서 다음 막에 펼쳐질 모습을 상상하며, 설렘으로 기다린다. 어쩌면 막간이 없으면 다음 막은 진행되지 못할 수도 있기에 연극에서 막간은 그저 잠시 멈추어진 상태가 아닌, 연극의 일부인 것이다. 아니 막간이 있기에 연극은 완성된다.

올 초 코로나 전염병이 돌 때만 하더라도 필자는 이렇게도 길어질 줄은, 이다지도 심각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한때의 전염병으로만 여겼다. 그렇기에 약간은 관망꾼의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던 적도 있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유치하였던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은 우리를 극한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지금도 어려운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제 이 사태가 끝날지, 끝난 뒤의 후유증이 얼마나 클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듯 언젠가는 코로나 고통의 터널도 마지막을 보여 줄 것이다. 무엇으로 자신하느냐고?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인간은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왔기에, 역사가 증명한다. 도전과 응전, 집단 지성, 자연 창조의 섭리 등이 그 답을 대신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은 연극의 막간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다음 막을 준비하는 막간 말이다.

그러면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형용하지 못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우리가 취할 자세는 무엇일까? 바로 지금을 막간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와 겸손이다. 사람에게 막간은 무엇일까? 내면을 향한 시간이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발견하는 시간이요, 인간 사이의 피상적 사회성과 교류성에만 매몰됐던 내가 내 속에 잠겨있던 고독한 존재로서의 참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고독감은 결코 외로움이 아니다. 홀로 있어 좋은 희열이요, 새로운 세상의 발견이다.



지금 우리가 최우선으로 신경 쏟을 일은 현재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주어진 가장 큰 과업은 무엇일까? 당연히 방역 피해의 최소화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예측하여 그에 대비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이것 하나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코로나 막간을 현명하게 보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를 돌아보는 일일지 모르겠다. 수없이 오고 갔던 사회적 언어와 그로 인한 다툼들 다 내려놓고 내면의 나로 시선을 돌려 나와 대화할 때이다.

누군가 말했다. 비울 때 비로소 채워진다고. 작은 것 하나 움켜잡은 손을 펴지 않으면, 결코 더 큰 것은 채워지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기능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잠시 내려놓고, 더 큰 나를 얻는 지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막간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허접한 것 비우라고, 그러면 진짜 보물로 채워주겠다고.

완연한 가을이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다. 잔인하였던 봄과 여름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얻은 추수이기에 우리는 나름 뿌듯하게 여겨도 좋으리라. 그러나 자연 앞에 지극히 작은, 보잘것없는 존재임도 잊지 말자. 이 불완전 존재에게 풍성함으로 채워주는 저 자연에 경외감을 표하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 경외감은 공활하게 비어있는 푸르른 가을을 내 마음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로 시작된다.

텅 비어있지만, 코발트 빛으로 속이 꽉 찬 가을 하늘의 공활함이 주는 마음의 풍요함으로 코로나 시대가 전하고 싶어 하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현명한 자는 떠날 때 길을 만들고, 머물 때 집을 짓는다. 지금은 막간이기에 머물면서 나만의 고독한 집을 지을 때이다. 더 나은 미래의 사회적 교류를 위해서.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