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 이전에는 채집과 수렵, 어로가 주된 경제생활이었다. 당시로선 필수불가결한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식생활이 다양해지고 먹거리 확보가 용이해지면서, 오락적 요소가 강조된 것이 오늘날, 낚시와 사냥이다. 스포츠로 발전하기도 했다. 사냥도 낚시도 필자는 본격적으로 해 보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몇 차례 거들어 본 것이 전부이다. 마니아 이야기 듣다 보면,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게 된다.
놀이는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를 주는 것이 무엇일까? 겨루기, 신명, 우연성, 표현욕과 성취감의 충족이다. 낚시와 사냥은 이런 재미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다른 생명체와 겨루기를 한다. 포획 대상에 대하여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생활행태와 심리파악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아닌가? 과정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신명을 얻는다. 미치지 않으면 참맛을 느낄 수 없다. 이론과 달리, 심리 싸움에서 엇나가기 일쑤다. 우연성이 없으면 흥미는 반감된다.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철학과 이상을 실현한다. 더욱 깊이 성찰하게 된다. 무엇보다 진정한 사냥꾼은 야비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름의 정도를 지킨다. 포획하든 놓치든 결과에 대해서도 유쾌하게 수용하고 승복한다.
낚시는 어로에서 파생되기는 했지만, 반드시 물고기 낚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따라서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는 어부와 구분하기도 했다. 특히 동양에서는 많은 시인묵객(詩人墨客)이 풍류와 은일(隱逸)의 수단으로 즐겼다. 어은(漁隱)으로 비유되며 은일자로 상징되기도 하였다. 은일은 동양사상의 기반이 되는 유불선 모두에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 유가는 출사를 추구하는 하편, 청빈과 탈속 같은 이상향의 지향으로 은일을 택하기도 하였다. 당초에 탈속이 주된 화두였던 도가와 불교는 말할 것도 없다.
은일 방법 또한 다양하다. 은일이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세월을 낚는 겉모습은 같아 보일런지 모른다. 강태공(姜太公)과 엄자릉(嚴子陵)의 고사를 보면, 강태공은 은근히 출사를 기다린다. 고기를 낚지 않고 사람을 낚은 것이다. 엄자릉은 진정 고기를 낚고 사람을 낚지 않는다. 강태공은 벼슬길에 올랐으나 엄자릉은 광무제(光武帝)의 수차례 권유를 단호하게 물리친다.
그러한 이유일까? 낚시와 관련된 시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심전심일까? 낚시를 소재나 주제로 한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단원 김홍도가 활동하던 시기는 조변석개(朝變夕改) 정국이었다. 여차하면 생사나 신분이 달라진다. 작가가 은일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단원이 그린 조어도 〈도선도〉, 〈승류조어도〉, 〈어부오수도〉, 〈애내일성〉, 〈조환어주〉 등도 유가적 은일 시의도에 해당한다.
〈어부오수도(漁夫午睡圖)〉, 김홍도, 지본담채, 29?42cm, 개인 소장 |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에 어울리는 활달한 필치로 '유하전탄야부지'라 썼다. 원래 두순학(杜荀鶴, 846~907, 중국 당나라 시인)의 시로 마지막 구절이다. 시 전체를 감상해 보자, 윤철규저 『시를 담은 그림, 그림을 담은 시』를 참고하면 아래와 같다.
山雨溪風卷釣絲 강산에 비 오고 강바람 부니 낚싯줄 거두고
瓦?蓬底獨斟時 배안에 들어가 막사발 술잔 기울이네
醒來睡著無人喚 술 취해 잠들어도 깨우는 사람 없으니
流下前溪也不知 앞 여울로 흘러가는 줄도 모르네.
엮시 단원 작으로 낚시하고 귀가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조환어주(釣還漁舟)에 담은 시는 아래와 같다. 모두 강태공이 됨을 경계하고자 했을까?
是非不到釣魚處 시비가 고기 낚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데
榮辱常隨騎馬人 영욕은 항상 벼슬아치를 따라 다니네.
김홍도 사유 세계를 엿보게 한다. 어느 하나 깊이 깨우치지 못했지만, 살면서 다양한 예술을 접하고, 예술인을 경험하다보니, 두드러진 공통점이 발견된다. 상대적으로 독서량이 많고 성찰이 깊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상물이 놀이의 전부가 되어가는 시대이다. 팬더믹으로 더 공고해지지나 않을까, 건전성을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영상물은 폐쇄성과 은밀성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놀이문화도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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