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쉼과 힘이 되어 주는 친구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쉼과 힘이 되어 주는 친구

오경운 진잠초등학교 교감

  • 승인 2020-10-22 10:11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진잠초교감 오경운 (1)
오경운 교감
"이거 뭔지 알아요?" 우리 학교 숲인 '감성숲'을 돌아보다 고목 사이로 올라온 굵은 줄기에 작은 불꽃 모양으로 피어난 하얀 꽃송이들을 가리키며 교장 선생님이 물었다. 내가 어떤 식물의 꽃인지 짐작도 못 하자, "두릅꽃이에요"라고 답했다. 감성숲에 심어놓은 자산홍과 앵두나무 사이에 저절로 땅두릅이 자라나 꽃까지 피운 것이었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던 때에도 겨울 추위를 이겨낸 새싹은 얼굴을 내밀고 어느 날엔가는 저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연분홍 얼굴을 하고 수줍은 듯 하늘하늘 피어오른 ‘낮달맞이꽃’들을 보며 이렇게 예쁜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못 보고 꽃들이 다 지고 나면 등교를 하겠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지난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졸업식, 입학식은 물론이고 앞으로 학사일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코로나 19에 감염되는 학생이나 선생님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늘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했다. 그럴 때면 감성숲으로 나가 씩씩하게 꽃망울을 맺고 무심하게 피어난 산수유, 해당화, 앵두꽃, 산딸나무, 작은 야생화들을 둘러보고 삼백 년이 넘은 팽나무 앞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노거수인 팽나무는 몸통의 반이 석회화돼 있음에도 봄이면 연둣빛 새잎을 피워내고 점점 무성하게 자라 작은 새들의 쉼터가 된다. 푸른 잎사귀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작은 새의 지저귐까지 10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것만으로 머리는 고요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평교사 시절,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각자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 배려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게 하려고 강낭콩을 작은 화분에 심고 돌보며 기르기, 우리 반 나무를 정하고 사랑의 인사 해주기, 학교 뜰 탐험하기 등의 자연과 함께하는 활동을 했다. 지금도 흙을 밟고 식물을 가꾸며 자연과 가까이하는 활동이 학생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인성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진잠초등학교 근무 3년이면 소위 '꽃알못'(꽃이나 식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우리 학교는 학교 뜰과 숲에 많은 식물이 자라고 텃밭까지 가꾸는 학교다. 이런 환경으로 학교는 자연과 함께하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교에서 거둬들인 매실과 모과, 감을 가지고 5·6학년 학생들이 매실청과 모과청을 담고 감말랭이를 만든 후 자신들이 만든 것을 맛보는 메이커 활동을 했다. 외부 손님이 오실 때면 매실 음료와 모과차, 감말랭이를 내놓으며 학교에서 딴 것이라며 자랑하기도 했다.

또 유치원과 1·2학년 학생들은 팽나무가 있는 감성숲에서 뛰놀며 꽃과 나무와 친구 되기, 나뭇잎과 열매로 여러 가지 만들고 놀이하기, 앵두를 따서 먹어보기, 3·4학년 학생들은 우리 학교 뜰 탐험하고 나무 지도 만들기 활동을 했다.

올해 학교 텃밭에 토마토, 가지, 고추, 고구마, 상추, 쑥갓, 수세미 등을 심었다. 6학년 학생들은 등교하는 날이면 정성스레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가꾸고 있다. 1·2학년 학생들은 거리두기를 하며 팽나무 교실에서 야외 수업을 하고 유치원 동생들과 함께 풀밭에서 방아깨비를 잡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아이들의 눈은 빛나고 웃음이 느껴진다.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수세미를 삶으니 겉껍질이 뭉그러지면서 속에 있던 섬유질 모양이 드러난다. 수세미를 건져 껍질을 벗겨내고 씨앗을 툭툭 털어 말리니 천연 수세미가 만들어졌다. 감성숲을 산책하고, 텃밭과 학교 뜰의 잡초를 뽑고 토마토의 순을 따주고 가지를 수확하며 수세미를 만드는 동안 코로나19로 우울했던 마음이 평안해졌다.

코로나19는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생각지 못한 일을 겪게 하고 마음이 힘든 코로나 블루라는 현상을 가져왔다. 하지만 식물과 자연이라는 친구와 함께하는 한 우리에겐 어려움을 이겨낼 쉼과 힘을 줄 것이다.
오경운 진잠초등학교 교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