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관장 |
디지털 네이티브가 주도적으로 활약하는 시점이 코로나19로 앞당겨졌다. 2020년은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 'AC'는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나뉘는 시점이다. BC와 AC의 경계선은 데이터의 양으로 구별된다. 코로나 이후(AC)는 데이터양이 상상을 초월하게 급증하고, 온라인프로그램이 다양화되고, 디지털 문화정책이 세분되며, 클라우드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학습해 개인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일상이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디지털 세대 격차를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현재 사회의 리더가 된 386세대 (현재 586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386세대는 20대에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친구를 바꾸어 달라고 하다가, 중년이 되어서 핸드폰을 사용했다. 손으로 편지를 쓰다가, 성인이 되어서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원고지에 손으로 쓴 레포트를 제출하다가, 컴퓨터로 아래아 한글을 독수리 타법으로 익혔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응답하라’의 드라마나 혹은 레트로풍의 영화에서 이해할 장면일지 모른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문화는 긍정과 부정이 거침없이 난무하다. 디지털 세상에서 분노, 증오, 혐오의 부정적 감정은 파괴력이 있는 속도로 전파된다. 그 이유는 분노와 증오는 공포와 불안의 감정과 동일한 근원을 가진 감정으로, 타인의 반응을 끌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공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칫 분노와 공포의 표현으로 관심을 받게 되면, 더 자극적인 분노를 표현하는 분노중독의 우려가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문화는 혐오를 넘어서는 감성의 상상력과 인간을 포용하는 예술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타인에 대한 연민 (The Monarchy of Fear)』에서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으로 감정에서 상상력이 필요하며, 인간을 포용하는 예술적 발걸음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문화기관은 코로나 이후 본격화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인류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해야 한다. 원론적이지만 온라인 접속자 수의 정량적 목표보다 양질의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는 정성적 목적을 우선시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위한 문화정책은 '지금 여기'의 자신의 좌표를 발견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현재의 데이터에만 집중적으로 소비한 나머지 다양한 시공간에서 만들어진 기억을 유형화한 문명의 가치를 놓치지 않게 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응시하기 위해 과거에 어떤 문화를 있었는지를 이해하면 지금의 나를 심층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 굳건히 서기 위해, 수많은 다른 공간에 자연환경과 사회관습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여기'라는 공간의 가치를 비로소 체감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문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디지털 문화가 일상이 될수록 사람들은 '지금 여기'의 문화를 다수가 공유하고 있다고 깨닫는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스웩(swag)은 다양한 감정을 인정하는 쿨함과 상대방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배려하는 매너일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개인 취향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희로애락 애·오욕과 같은 나와 타인의 감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용돌이와 같은 삼라만상의 세상에서 힘든 사람을 배려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올바르고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 나쁜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남에게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을 겸비해 디지털 세계에서도 훈훈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가상현실의 게임이 그렇듯이 상대가 있어야 삶이 더 흥미롭다는 공존문화의 주역이 되기를 바란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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