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
맞이한 적 없지만, 이제 우리는 신출귀몰한 바이러스와 명운을 같이해야 한다. 코로나 뿐 아니라 겨울 손님 인플루엔자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변종 바이러스 출몰까지… 인류의 상위 포식자와의 불편한 동거는 이미 시작됐다. 감염이 확인되는 순간 만천하에 발자취가 드러나고, 동선과 겹치는 상점들은 줄줄이 영업이 중단된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요주의 인물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 같은 차가운 성질에만 해당한다고 여겼던 '거리두기'는 따뜻한 체온이 감도는 사람 관계에 적용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전하기 위해 단행했던 방편들은 결국, 고립 위기감과 건강 염려증, 결벽증과 같은 '불안'을 기반으로 한 감정적 질병을 초래했다.
'불안(不安)'은 우리 삶에 필요한 정신적 징후 중 대표적인 감정체다. 사실 불안감이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불안은, 유사이전(有史以前) 생존과 진화에 유용하게 쓰이며 가장 효율적인 상황으로 끌어내기 위한 적응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는 더는 생존에 절대적인 감정 도구가 아니므로 작용을 줄이거나 멈추는 게 맞다. 그런데도 여전히 맹수와 싸워가며 먹을 것을 구하던 원시시대에 썼던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특히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DNA 속 잠자던 거친 본능이 깨어나 불안과 강박이 활성화된다. 병에 걸릴까 봐, 죽을까 봐, 잘못될까 봐…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해 불투명하고, 경험하기 싫다는 저항의 표현으로 불안이 전면에 나선다.
'불안'은 계륵(鷄肋)이다. 지나치면 모자람 만 못하듯 지금 인류에게는 효용 가치가 상실된 감정 중 하나다.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 시대에 대비해 또 다른 의미로서의 생존을 위한 성숙한 감정이 필요한 때다. '코로나19'를 극복한 이후라도 정서적 후유증을 감내하느라 긴 시간 상당한 고통에 시달릴 수도 개인의 문제가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갉아먹는 건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보다 두려움과 불안을 자아내는 마음작용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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