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꽃의 매혹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꽃의 매혹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20-10-19 09:57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어쩌다 한가롭게 카톡 프로필 사진들을 쭉 내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 꽃에 매혹된 듯, 꽃은 매우 빈번한 피사체다. 나 역시 꽃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봄이면 유채꽃, 가을이면 코스모스, 꽃 군락을 이룬 곳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왜 우리는 꽃에 매혹되는 것일까? 무채색의 일상과는 너무도 다른, 꽃의 선명한 빛깔, 탐스러운 자태가 '살아있음'의 절정을 상기시키는 까닭일까. 딱히 의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꽃이 뿜어내는 '살아있음'의 절정을 예찬하고, 그토록 '선명한 빛깔로 살아있음'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꽃의 매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찬란한 꽃도 시들지 않는 꽃은 없고, 찬란해서 더욱 시듦은 아쉽다. 대신 꽃이 진 자리엔 열매가 영글고, 이듬해 열매는 다른 꽃으로 부활한다. 이렇게 꽃은 꽃 자체의 찬란한 생명 절정을 찬탄케 할 뿐만 아니라, '순환하는 생명'을 시적으로 육화한다. 그래서 꽃은 '순환하는 생명'을 대표하는 은유가 되나보다.

지난 주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루이스 글뤽도 자주 꽃을 은유로 순환하는 존재의 차원을 열어낸다. "야생 붓꽃"을 통해 글뤽은 "뻣뻣한 흙 속에 묻힌"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야생 붓꽃의 생명을 찬탄한다. 글뤽은 꽃의 목소리로 말한다. "내 고통의 끝에/문이 있었어." 꽃은 이미 죽음을 경험했고, 죽음 끝에서 다른 생의 문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내 생명의 중심으로부터/거대한 분수가 솟구친다. 짙푸른 빛으로" 붓꽃은 부활한다.

순환하는 생명! 그리하여 현대인에게 꽃은 이미 까맣게 잊혀진 고대의 시간관을 환기시키는지도 모른다. 고대인들은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고 믿었다. 고대인에게 인간 종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었을 터, 자신의 관점이 아닌 대자연의 관점에서 시간을 파악했음직하다. 어차피 의식의 여명기, 인간 자아와 자연의 구분은 지금처럼 확고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대자연은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계다. 수명이 길어봐야 120년을 넘기 어려운 인간 생명체의 차원에서 시간은 시작해서 정녕 끝장나는 "화살"일 수밖에 없지만, 고대인이 대자연과 대우주의 시간차원에서 시간을 인식했다면, 필시 시간은 순환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과거-현재-미래는 동일선상에 놓였을 것이다. 관점과 차원이 문제다.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면 새로운 시간 차원이 열린다. 197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리아 프리고진은 "시간이 거꾸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시간의 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은 충분히 긴 시간에서만 가능하고, 닫힌 체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생애와 역사를 넘는 대자연의 우주 시간 속에서는 시간은 가역적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은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뱀을 숭배했고, 나날이 모양이 변화할 뿐만 아니라 그믐의 죽음을 너머 초생달로 부활하는 달을 신성시했고, 죽은 듯 동면한 후 새끼를 거느리고 나타나는 곰을 숭배했다. 뱀과 달과 곰이 '순환하는 대자연'을 대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더 이상 고대인의 상징을 숭배하지 않는다. 고대를 지나 어느 시기부터 시간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끝나는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로 여겨지게 된다. 그 변환의 시기는 문자의 발명, 가부장제의 발달, 종교적으로 여신이 남신으로 교체되는 시기와 맞물린다고 한다.

현대인은 뱀-달-곰 대신, 무의식 깊숙이 각인된 고대인의 순환적 시간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에 투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꽃에 매혹되고, 꽃을 숭배하는 것이 아닐까. 꽃에 대한 매혹은 개체로 영생하려는 미이라의 뻔뻔한 탐욕과는 다르다. 꽃은 피고 지는 생명의 부침과 순환, 죽어도 다시 사는 큰 차원의 역설을 깨닫게 하는 매개인 까닭이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