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기 정치부 기자 |
그는 왜 갇혔는지에 대한 물음표를 안고 긴 세월을 보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내뱉은 대사는 "누구냐 넌". 긴 세월 아무런 이유 없이 갇혀 있었으니 미치도록 궁금했을 게 당연하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15년을 갇혀 있던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올드보이와 대전·충남 혁신도시가 묘하게 겹쳐진다. 올드보이는 1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으며, 혁신도시는 16년 만에 지정의 꿈을 이뤄냈다. 단순하게 햇수로만 계산해도 대전충남 혁신도시의 기다림이 올드보이 보다 1년 더 길었다.
그동안 대전·충남은 외딴섬이었다.
2004년 혁신도시 정책 도입 이후 전국에서 두 지역만 제외됐다. 이유도 시답잖았다. 세종과 밀접하고,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정부대전청사가 있다는 게 이유다. 이런 상황은 악재로 이어졌다.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과 지역인재 채용의 혜택을 적용받지 못했다. 취업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 청년들은 지역을 떠났다. 인구는 감소했고, 쇠퇴할 대로 쇠퇴한 원도심은 낡은, 그대로 남겨졌다. 보다 못한 정치권은 혁신도시 지정의 근거가 되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결과론적으로 통과를 이뤄냈으나 TK 지역 의원들의 태클이 들어왔다.
현재 국민의힘 중진인 모 의원은 당시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종이 인접한 지역이기 때문에 공공기관도 많고, 그래서 반대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반대로 해당 지역에서 16년간 혁신도시 지정이 안 됐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어리에서 지역 간 이기심이 이렇게나 심할 줄 몰랐다. 다행히 지역 정치권이 한 데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반대 기류를 잡아냈다. 이후 최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대전·충남 혁신도시 안건 심의가 통과하며 지정을 이뤄냈다. 심의 당시에도 당초 발표시간보다 30분가량 늦어지면서 기자들 사이에선 "설마"란 단어가 연신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통과를 이뤄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혁신도시의 알맹이인 '공공기관 이전'이다. 대전은 혁신도시 지구로 예정된 동구 역세권 일대와 대덕구 연축지구에 들어설 기관을 물색 중이다. 역세권 일대는 철도 관련 기관이, 연축지구는 과학기술 관련 기관이 제격으로 보인다. 충남도 내포신도시에 들어설 공공기관을 찾고 있다. 순리대로 흘러간다면 그동안 지역민이 겪었던 설움과 취업을 위해 타지로 떠난 이들이 지역을 찾을 절호의 찬스다. 인구가 모이면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중심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어떤 공공기관이 들어설지 벌써 궁금해진다. "우량 공공기관, 누구냐 넌".
방원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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