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장을 3번 역임하며 10년 동안 대전시정을 진두지휘하는 등 40여년간 공직생활을 했던 염홍철 전 대전시장은 '아침단상'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이슈에서 균형감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염 전 시장을 만나 '아침단상' 1000회 게재를 맞은 소회를 비롯해 여러 현안에 대한 조언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아침단상 게재 1000회를 맞았습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쉽지 않은 여정인데요, 아침단상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침단상을 쓰게 된 계기는 물론 중도일보의 의뢰를 받아서였지만 매일 아침 중도일보 독자들과 만난다는 기대와 설렘이 컸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생각도 있었는데 그것은 독자들이 상호 '다름'을 인정하도록 균형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에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쇠퇴하거나 무기력이 아니라 무엇을 발견하고 참여 하고 싶은 생각이 더 해졌습니다.
-아침단상 내용을 보면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가벼운 주제에서부터 묵직한 사회 문제 등 내용 또한 방대합니다. 주제 선택은 어떻게 하십니까.
▲일단 주제는 인문학 위주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정치, 경제, 지역발전 등을 간간히 삽입했는데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 개인의 주관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1000회를 쓰다 보니 중복된 소재가 많았는데 같은 소재 아래서도 각 주제별 차별성 있는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관한 소재만 20여 편의 글을 썼기 때문에 요즘은 사랑 얘기를 자제하고 있지요.
-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멘토이자 어른입니다. 아침단상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글쎄요. 존경받는 멘토라는 말에 부담이 되네요. 솔직히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인문학을 주제로 삼으면 대체로 공감을 하는 데 정치, 경제에 대한 글을 쓰면 찬반이 엇갈립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양쪽의 주장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독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나는 모른다. 고로 존재 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는 형식을 패러디 했는데,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제동을 걸고 싶었습니다.
쉽게들 진리라고 말하는데 진리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992년 관선으로 시작해 민선 3기와 민선 5기 등 3차례에 걸쳐 10년간 대전시정을 이끄셨습니다. 당시 대전은 '93 대전 엑스포'를 치르며 교통의 요지이자 과학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인근 세종시로의 인구 유출 등 도시 전체가 활력을 잃고 있습니다. 과거의 대전과 현재의 대전을 보는 소회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관선 시장을 포함하여 세 차례에 걸쳐 시장을 했습니다. 역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93 대전 엑스포를 치렀다는 점이지요. 대전 엑스포는 대전을 우리나라 중핵도시로 발전 하는 도약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대전 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기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정부대전청사의 이전이지요.
인구 유입 효과가 컸고 10000여 명의 중앙정부 공무원이 거주함으로서 대전에 수준과 격을 높였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종시로의 인구 유출을 말씀하셨는데 환경이나 교육 등의 이유, 또는 투자 목적으로 대전시민들이 세종시로 상당수 이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주인구는 줄어들었으나 세종시로 인한 유동인구는 상당히 늘어서, 보이지 않는 경제 성과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허태정 시장도 제기 하였는데 대전과 세종의 통합은 상생의 기반이 되며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서의 인프라를 완비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합니다. 시간을 두고 대전과 세종 시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일화도 많으실텐데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 한가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일화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야사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하셨는데 대통령 취임 후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요지는 '불요불급한 예산의 절약'이었기 때문에 정부나 청와대 참모들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이때 대통령께 "이 공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대전시민의 상당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라는 내용의 '지휘서신'을 올렸습니다.
대통령께 어떻게 '저항'이라는 용어를 쓰느냐하는 반대도 많았지만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 단위 중앙행정기관의 대전 이전을 결정했고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공식을 개최한 것이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반대로 지금은 중단돼 안타까운 정책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시의 정책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하지 않고 잘 추진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가장 아쉬운 점은 도시철도 2호선의 트램화입니다.
원래 중앙 정부의 예타 통과안대로 진행했으면 도시철도 2호선은 지난해에 이미 개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트램도 좋은 교통수단 이지만 그것의 성공은 그 도시의 상주인구, 도로 체계, 교통환경 등이 부합할 때 성공할 수 있으나, 인구밀도가 높은 대전에서 기존의 도로를 상당히 잠식하면서 트램을 깐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 이후로 두 시장을 거치면서 6년 이상 준비했지만, 아직 예타도 통과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보완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 우울증 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시장 재임 당시 출범시킨 '복지만두레'와 같은 민·관이 협력하는 복지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얼마 전 아침단상에서도 썼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라는 두 가지 부담은 국가적 현안이면서 가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다가 코로나 감염병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으로 우리를 매우 우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복지만두레 같은 민관협력 복지모델과 '지역사회 통합 돌봄'사업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전시장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한국공항공단 이사장, 한밭대 총장,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WTA) 회장,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이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인데요.
▲저에게는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한국공항공단에서는 경영인으로 참여했고, 한밭대학에서는 일반 종합대학으로 체계를 갖추는 임무를 수행했고 중소기업특별위원장은 중앙정부에 참여하여 일자리 창출과 대기업 중소기업 상생 관계를 촉진하는 일들을 추진한 것은 보람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정치권에서 과도한 진영 논리에 빠져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 사회적 문제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단합하고 화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우리 정치권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의 분열과 경쟁은 부적절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보수와 진보는 가치와 철학적 기반을 외면하면서 정쟁으로만 치닫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어느 나라도 명확히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적인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진보적인 정책인 경제민주화를 강조했고, 집권시에는 사회적 경제도 장려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보수적 정책인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한미FTA를 앞장 서 추진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일을 예로 들면 영국에서는 보수와 노동이라는 이념이 당명에 반영되었지요. 그런데 양당은 보수와 진보의 정책이 상호 수렴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수정당인 영국 보수당은 노동이사제 도입, 기업경영진 보수 제한 등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서 인지 지난 2017년 총선에서 보수당 지지자 중 노동계층이 44%를 얻어, 노동당 지지자중 노동계층 43% 보다 상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진데 진보는 종북세력, 보수는 부패세력으로 낙인을 찍어 비생산적인 정쟁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청년실업의 장기화로 청년문제도 사회문제입니다. 아침단상을 보면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삶의 지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젊은 세대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 내재돼 있던 잘못된 관행, 즉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거나 위선적 태도를 실용주의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젊은이들은 불공정을 가장 '더럽고 치사하다'고 생각하지요.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시대에 불가피하게 우리의 생활공간이 온라인이나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다는 점은 큰 장점이며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이러한 젊은이들에게 '미래는 오늘 써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에 생각하거나 꿈꿨던 것들입니다. 미래는 가능성과 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변화시킴으로서 창조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담=오희룡 교육과학부장·정리 박수영기자. 사진=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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