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권40, 세종 10년 6월 25일 기사에 황희가 사직을 간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간통에 뇌물수수죄로 몰린 모양이다. 자신의 능력 부족과 불효 불충을 탓하고 노쇠했음을 아뢰며, "이번에는 뜬소문으로 탄핵(彈劾)을 받게 되었으나, 다행히 〈전하의〉 일월 같은 밝으심을 힘입어 무함(誣陷)과 허망(虛妄)을 변명해서 밝힐 수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의심을 조금이나마 풀게 되고, 그대로 계속 출사하라고 명하시니, 은혜가 지극히 우악(優渥)하십니다. 신은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책임(責任)이 중대한데 품은 계책이 없다면, 곧 비방을 초래하게 되고 화를 자취(自取)하게 되는 것은 사세(事勢)의 당연한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신의 평소의 행동이 이미 남에게 신임을 받기에 부족하면서도 지위가 신하로서 지극한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으로 인하여 누(累)가 사헌부에 미쳤으니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여 깊이 스스로 부끄러워합니다. 신이 비록 탐욕(貪慾)스럽고 암매(暗昧)한들 어찌 장오(贓汚)의 죄명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마음 속으로 겸연쩍어서 조정의 반열에 서기가 낯이 뜨거운데, 〈일국이〉 모두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 즐겨 나갈 수 있겠습니까"라 한다. 세종이 극구 만류하나 굳게 사양하고 사퇴한다. 옳은 처신일까?
설화에는 이러한 이야기도 전한다. 황희정승 집안에 하인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하인의 집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마침 시부의 제삿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제사상 차리기는 애물단지인 모양이다. 여종이 와서 물었다. "아버님 제삿날인데 저희 개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아무래도 제사를 안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승이 답했다. "안 드려도 되지." 조금 있다 노복도 찾아와 물었다. "아버지 제삿날인데 저희 개가 새끼를 낳았지만, 그래도 제사는 드려야겠지요?" 황희 정승이 답했다. "제사 드려야지." 그러자 옆에 있던 정승 부인이 "대감께서는 어찌 같은 일에 둘 다 옳다고 하십니까?"라고 핀잔했다. 이에 황희는 "아내는 제사 드리기 싫어하기에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고, 남편은 제사 드리고 싶어 하기에 제사 드리도록 했을 뿐이오"라고 말했다. 명판결이라 세간에 회자 되는 이야기다. 묻는 사람 뜻을 헤아려, 원하는 바 대로 답한 것이다. 옳은 일일까? 요즈음 판결이 그렇다. 영장 발부부터 오락가락이다. 누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일까?
그림은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조선 도화서 화원)가 그린 '취중송사(醉中訟事)'이다. 강희언(姜熙彦, 1738 ~ ?, 조지서 별제, 화가)의 집이며 작업장이었던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렸다고 되어있다. 팔 폭 병풍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 중 한 폭이다. 원래 낱장으로 전해오던 것을 훗날 표구했다 한다.
우선 우아하게 장식된 일산(日傘)이 눈길을 끈다. 시종이 받치고 있고, 그 아래 남여(藍輿)에 앉은 태수(太守)가 접부채 들어 무어라 지시하는 모습이다. 의자에는 호피가 덮여있다. 왼쪽 전복 입은 사람이 함을 메고 서 있고, 비석 뒤 엎드려 숨어 보는 사람도 있다. 눕다시피 엎드려 지필묵 펼치고 받아쓰는 이도 있다. 가마꾼 주위에는 아전으로 보이는 자들이 섞여 있다. 사이로 기생 행색인 사람과 먹을 것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 돗자리 등 집기를 잔뜩 들고 멘 짐꾼도 따른다. 하나같이 매무새가 몹시 흐트러져 있다. 뒤쪽 마을 가운데로 홍살문이 보이니 관아가 가까운 모양이다. 근무 중에 낮술이 지나쳐, 회가 동하여 화류놀이라도 가는 것일까? 아니면, 진탕 놀고 귀청하는 길일까?
포졸이 다투던 사람들 끌고 가다 태수 일행을 만났다. 즉석에서 송사가 벌어졌다. 엎드린 두 사람은 여전히 다투고 있다. 초립 쓰고 포 입은 사람과 경황이 없어 보이는 다른 한 명이 있다. 맨발에 허리를 새끼로 매고 있어 상중으로 보여, 묘지 관련 송사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나름대로 판결하는 것일까? 앞쪽 포졸 둘은 열띤 토론 중이다. 뒤쪽 골목길엔 난데없이 멧돼지 두 마리가 가로지르고 있다. 김홍도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여백이다. 마음의 여백, 정신적 휴식처이다. 어찌 이렇게 순간 포착이 치밀할까? 생생한 현장감을 줄까? 조선 풍속화 대할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행려풍속도. 김홍도. 1778년 작. 90.9 × 42.7㎝. 비단에 담채 |
두말이 필요 없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판관에 따라, 피의자 위치에 따라 변하는 것이 법인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되어서야 법이라 할 수 있는가? 사법부가 만취한 것은 아닐까, 종종 의문일 때가 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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