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하고자 추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무산 사유 중 하나가 지나치게 가해진 인공가미였다. 개발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인간 편의를 도모했다고 다 선이 아니다. 자연지역과 문명지역 구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명산은 온통 자연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탓에 무명 산을 찾고 있다. 단점이 하나 있다. 아차하면 길을 잃는다. 발자국 쌓여 길이 되지만, 발길 뜸해지면 이내 사라진다.
대진고속도로 오가다 보면, 대전방향 금산인삼휴게소 뒤편 산이 무척 고와 보였다. 찾아보니 닭이산, 철마산이다. 아내와 함께 산을 찾았다. 시국 탓일까?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특별한 산행이었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 아기자기한 등산로에 신선한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황홀경에 그만 엉뚱한 곳으로 하산 하였다. 주차장까지 대단히 멀었으나 고속도로 옆 산자락 길을 따라가고자 했다. 한참 가다보니 그마저 사라졌다. 한동안 산속을 헤맸다. 다시 정상부터 내려와야 길을 찾을 것 같았다. 무성한 가시덤불과 잡목을 헤치고 정상을 향한다. 이미 어두워졌다. 지친 아내가 노숙하고 가자한다. 의외로 숲속은 차지 않았다. 서로 다독이며 남은 힘을 쏟아 붓는다. 다시 찾은 정상. 길을 잃을까 두려워, 하는 수 없이 낮에 내려가 본 길로 하산한다. 쏟아질 것 같은 무수한 별들이 따라다니며 활짝 웃는다. 보름 앞둔 교교한 달빛이 온 산야에 내려앉아 신비로움을 더한다. 그 와중에도 함께 간 아내는 환상에 젖는다. 아이들에게 전화로 물어물어 카카오 택시를 부른다. 뜻하지 않게 야간 산행에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 본다. 택시 기다리며 노변에 앉아 달을 본다. 달 속에 그림 한 폭이 담겨있다.
《월야산수도》 김두량, 1744년, 82×49.2cm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
이 그림은 52년 후에 그려진 김홍도의 '소림명월도'와 같은 소재를 담고 있다. 근경 위주 숲, 그 사이로 흐르는 계류, 둥근 보름달이 그렇다. 배치와 수지법(樹枝法)이 다를 뿐이다.
'월야산수도' 나무는 게 발톱 닮은 해조묘(蟹爪描)로 그렸다. 아래로 처진 나무 가지가 고목으로, 오래된 숲으로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자유분방한 미점과 그에 호응하는 짧은 수지법으로 활달한 느낌이 더해져 왠지 스산한 느낌이다.
당시에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이 화단을 휩쓸던 시대이다. 화가 모두 자신을 찾는 일에 열중하지 않았을까? 변화는 새로운 변화를 찾는다. 특히 남리는 실학적 태도를 가졌던 공재 윤두서를 사사했다. 개성이 넘친다. '흑구도' 등 다른 유작에서 입체적인 음영법, 원근법을 구사한다. 전통 동양화 기법에 남종화, 서양화 기법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남리가 인상파 그림의 호선형 원근법을 보았는지, 의도적인 원근 처리법으로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화면 중앙 하단에 배치한 호선형 계류가 자신감 넘치는 자연스런 처리이긴 하나, 여타 동양화에서 볼 수 없는 원근감을 준다. 덕분에 계곡이 한없이 깊어진다.
그림 왼쪽 위 관지에 의하면 갑자(1744)년 중추(가을, 한가위)에 그린 것으로 되어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모든 잎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흔든다. 모두 고사목일까? 그윽하고 고혹스런 달빛이 세월의 무상함이라도 불러 다가올 미래가 보였을까? 모두 옷을 벗겨, 한겨울 을씨년스런 느낌이다. 나무 사이로 밤안개가 누비고 물살이 거세다. 달이 들어나도록 홍운탁월(烘雲托月)법을 썼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돋보이게 한 것이다. 부단히 연구하는 실험정신의 산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그려온 이상향이 담긴 관념산수화로 볼 수도 있다.
문명과 자연, 보전과 개발은 대립개념이면서 보완관계이다. 상생의 길도 있으려니와 새로운 탄생과 상실이 있다. 따라서 항상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신중을 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실험이다. 실험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내키는 대로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피할 일도 아니다. 실험하는 것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준비이다. 더러는 그대로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왜곡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본질을 지워버리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하나, 실험은 연습장에 따로 한다. 작품에 실험하지 않는다. 특히 묵화는 덧칠이 어렵다. 다시 그려야 한다. 국가와 사회를 함부로 실험하여서는 안 된다. 오늘 찍어내는 작은 점이 모여 작품으로 남기 때문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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