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독이 든 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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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독이 든 성배

  • 승인 2020-10-04 18:03
  • 수정 2021-05-31 10:52
  • 신문게재 2020-10-05 18면
  • 금상진 기자금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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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 감독을 흔히들 '독이 든 성배'라 부른다. 성적이 부진하면 파리목숨만도 못한 자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많은 지도자가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한다. 지난 9월 대전하나시티즌이 또 한 명의 감독을 떠나 보냈다. 사퇴 이유는 늘 그러했듯 성적 부진이다. 리그 3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고 선두 추격의 여지가 있었지만, 황선홍 감독은 미련 없이 팀을 떠났다. 자진 사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사실상 경질이라는 것이 축구계의 시각이다. 시티즌의 23년 역사상 13명의 감독이 대전을 다녀갔다. 평균 재임 기간이 2년도 안 된다. K리그 1, 2부 구단 중 가장 짧다.

시티즌의 지휘봉을 잡았던 13명의 역대 사령탑 중 박수를 받고 팀을 떠난 감독은 거의 없다. 8명의 감독이 시즌 중 팀을 떠났고 7명이 감독 대행을 수행했다. 시민구단 초대 감독이었던 김기복 감독이 유일하게 큰 소란 없이 임기를 마쳤을 뿐이다. 2대 이태호, 6대 유상철, 9대 최문식 감독이 시즌을 마치고 사임했으나 이들 역시 성적 부진과 구단과의 마찰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쓸쓸하게 퇴장했다.

시티즌 역사상 최장기간 지휘봉을 잡았던 감독은 3대 최윤겸 감독이다. 최 감독은 2003년 부임 첫해 팀을 꼴찌에서 6위로 끌어올렸다. 수원, 포항 등 우승권의 강팀을 연달아 격파하며 홈경기 최다 승률을 기록했고 주말마다 2만이 넘는 구름 관중을 불러들였다. '축구특별시'라는 별칭도 이때 얻었다. 만년 꼴찌 팀을 리그 중위권으로 끌어 올리며 명장으로 거듭났지만, 코치를 폭행하는 사건을 터트리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팀을 떠났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대전 팬 중에는 대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 감독을 추억하는 팬들이 제법 많다.

4대 김호 감독은 부임 첫해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냈으나. 성적 부진과 구단과의 마찰이 겹치며 사임했다. 수석코치였던 왕선재 감독이 팀을 이어받았으나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렀고 '승부조작'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터지면서 사임했다.



고 조진호 감독은 역대 시티즌 감독 중 유일하게 우승컵을 안겨준 감독이다. 앞서 2대 이태호 감독이 FA컵 우승을 이끈 전력이 있지만. 2부 리그 강등 1년 만에 승격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조 감독 역시 이듬해 성적 부진이라는 불명예로 퇴진했지만, 대전 팬들에게 우승의 기쁨을 선물했던 지도자로 남아있다.

11대 고종수 감독은 역대 시티즌 감독 중 최연소 감독이다.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며 취임 첫해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이듬해 성적 부진과 구단 대표의 교체가 맞물리며 팀을 떠났다. 12대 이흥실 감독은 대전 역사상 최단 기간 감독이다. 성적과는 관계없이 팀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며 6개월 만에 지휘봉을 황선홍 감독에게 넘겼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휘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구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좋은 감독보다 좋은 회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아무리 명장이 감독으로 온다 하더라도 구단 프런트와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성적을 낼 수 없다는 말로 풀이된다. 황선홍 감독은 퇴임 2달 전 기자회견에서 대전 구단 프런트를 향해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일침을 날렸다. 황 감독과 대전 구단과의 관계가 편하지 않았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새 감독이 누가 오느냐에 대해 시티즌 팬들은 더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떤 지도자가 오더라도 책임지고 팀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팬들은 바라고 있다. 프로스포츠는 팬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팬들마저 잃고 싶지 않다면 각자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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