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원장. |
그런데 장례식에 갔다가 동생들을 통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삼촌께서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시신을 한 의과대학에 기증하셨던 것이다. 삼촌께서는 시신 기증을 통해서 마지막까지 세상에 보답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기뻐하셨다고 한다.
필자는 장기 기증을 희망하는 환자나 가족을 몇 차례 경험하였는데,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약 40년 전 전공의 시절에 고등학생인 아들이 뇌사상태에 빠지자 아버지가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장기 이식이 이루어진 일이다. 그때에는 의사들조차 장기기증에 익숙해 있지 않은 시기였기에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외과에 장기 기증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신장을 이식받을 환자가 도착, 수술에 들어가고, 가족들에게 각서도 받아야 했으며, 뇌사 판정도 내려야 하고 정말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신부전환자 두 사람을 살리고, 다른 두 사람에게는 각막을 줌으로써 세상의 빛을 선물하였다.
이제는 현대 의학의 발달로 장기만 있으면 신장이나 간, 그리고 심장이 나쁜 경우에도 이식수술로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생명 나눔의 실천인 장기 기증이 활성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2018년도 뇌사 기증자는 약 450명으로, 1750건의 장기이식 수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식 대기자는 3만7000여 명으로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후나 뇌사상태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 또는 전부를 기증하는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신 기증이다. 시신 기증이란 의과대학의 해부학 연구를 위해서 시신 전부를 기증하는 것으로 시신 기증을 원하시는 경우에는 원하는 의과대학에 요청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해부학에 사용할 수 있는 시신이 상당히 부족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는 해부학 연구를 위한 시신의 기증을 기대하고 있다.
둘째는, 장기기증이다. 사망하거나 뇌사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손상된 장기의 회복을 위하여 대가 없이 자신의 장기의 일부 혹은 전부를 기증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이다. 한 사람이 장기를 기증하면 각막, 폐, 신장은 각각 2명에게 생명을 줄 수 있고, 심장, 간, 췌장 등은 한 사람에게 기증할 수 있어서 전부 9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 나눔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1일 평균 5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다.
세 번째가 인체조직기증이다. 사후에 뼈, 피부, 근막, 심장판막, 인대, 연골, 혈관, 신경, 심낭 등의 조직을 기증할 수도 있다. 피부는 화상 환자, 정맥은 혈관 환자, 뼈와 인대는 장애를 회복시키고, 심장 판막은 심장병 환자, 각막은 시력 회복에 사용될 수 있어서 한 사람이 기증한 조직으로 수많은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인구 백만 명당 인체조직 기증자 수는 약 5명으로 미국 100여명 등에 비해 매우 적어서, 필요한 조직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뇌사나 사후에 장기나 인체조직을 기증하기 원할 경우 질병관리본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장기이식관리센터,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장기이식등록기관, 조직기증자등록기관 등을 통하여 기증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또 뇌사 또는 사후에 장기 기증을 희망하는 경우 장기기증등록제도를 통해서 약속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나 조직 기증은 뇌사 및 사후에 가능하다. 생전에 기증희망 서약을 하고 뇌사 및 사후에 보호자가 기증에 동의하면 기증할 수 있고, 만일 생전에 기증희망 서약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보호자가 기증에 동의하면, 기증할 수 있다. 또한, 기증자에 대해서는 장례비 지원뿐만 아니라 숭고한 필란트로피 정신을 기리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이승훈 을지대학교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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