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히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에게는 거짓말쟁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frame) 이란 '창틀'이란 의미지만, 여기서는 관점이나 생각의 틀을 말한다.
의상업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재봉틀은 바늘의 프레임을 완전히 뒤바꾸어 탄생된 발명품이다.
1819년 미국 매사츄세츠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엘리아스 하우(Elias Howe; 1819-1867)라는 불구자는 아내가 삯바늘질을 밤새워 하는 것이 애처로워 재봉틀을 발명하겠다고 결심하였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가 발명에 성공한 것은 꿈에 아프리카 토인에게 붙잡혀 죽게 되는 장면에서 창에 큰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보고 바늘의 귀에 뚫려 있는 구멍을 바늘의 눈에 뚫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바늘귀를 바늘눈으로 생각을 전환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역발상이었으며, 이것이 곧 재봉바늘에 대한 프레임을 바꾼 것이었던 것이다.
손바느질에 의존하던 섬유업계가 200배나 빠른 재봉틀로 인해 맞이한 변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봉틀을 발명한 하우는 아이삭 싱거(Isaac Merrit Singer; 1811-1875)라는 사람에게 기술을 도용당하고 말았다. 싱거는 재봉틀에 노루발 기술을 덧붙여 '한 집에 한 재봉틀'이라는 홍보를 통해 바느질의 프레임을 바꾸어 세계 최고의 재봉틀 회사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우는 가난한 불구자로 쓸쓸히 삶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프레임'이라고 하는 고정된 관점을 바꾸면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기도하는 신자가 담배를 태운다면 지독한 불신자의 모습이지만, 담배를 태우는 시간에도 기도한다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즉, 사람들은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고 또 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주면 옳은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막연하게 믿고 있지만,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진실은 버려진다"고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였다.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이란 '인식의 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나 안경으로 비유한다.
그는 인간은 살아가는 내내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이러한 프레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프레임은 바로 언어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예를 들고 있다.
어느 정치인이 '세금구제'라는 단어를 쓴다면 '구제'라는 단어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러한 고통에서 구원해주는 자, 영웅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으면서, 나아가 이러한 '구제'를 방해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악당으로 인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금구제의 진실은 적자예산이며 인기영합주의에 무책임성으로 차세대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는 것이다.
레이코프는 그러므로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프레임을 먼저 주입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유명한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에서 그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 말에서 코끼리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심리와 흡사하다.
레이코프는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한 중립에 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다면서 언어에 의해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한 번 언어와 이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 프레임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프레임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언어와 이미지에 의한 프레임을 선점하는 것'
이것이 특히 정치나 마케팅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착한가격' 이라는 말처럼 착하다는 언어에서 선한 프레임이 생기고, 외모가 잘 생긴 모델을 쓰거나 인물을 내세우면 그와 연관된 사안에서 옳고 정의롭다라는 프레임이 생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목격한 사실이 의미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의 프레임 속에서, 상대방의 언어로 얘기하면 상대방의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재구성해 대응하고, 다른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사회의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똑같은 말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정치를 하는 건 변화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프레임 법칙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선거에서 걸프전쟁같은 안보를 강조하는 부시에게 클린턴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로 대선에서 이긴 예를 많이 들고 있다.
즉, 상대방의 프레임 속에서 그를 반대하는 단어를 나열해서는 프레임에 갇힌 사람을 설득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불어 사는 민주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불협화음이 좁혀지지 않는 것은 자기의 프레임에서 갇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언어와 이미지에 의해 쇄뇌된 것일 수도 있다.
평화와 안보, 성장과 복지, 개혁과 화합……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언어 속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또 그 용어와 용어의 진실된 의미가 다를 수 있음에도, 언어에 현혹되어 진실을 살피지 못하고 스스로의 가치관마저 왜곡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너는 틀렸고,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레임의 법칙'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주변사람들의 프레임에 덩달아 옳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프레임에 나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세우는 용어에 현혹되어 용어 속에 감추어진 진실된 의미를 살피는 신중함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나도 프레임에 갇혀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토록 주장하는 상대방의 의견도 한 번 쯤 살피는 배려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최민호/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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