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37강 영천세이(潁川洗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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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37강 영천세이(潁川洗耳)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0-09-22 10:5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37강 영천세이(潁川洗耳) : 영천(潁川)에서 귀를 씻다

글자로는 潁(강이름 영), 川(내 천), 洗(씻을 세), 耳(귀 이)로 구성되어 있다.

본 이야기는 송(宋)나라 유의경(劉義慶)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볼 수 있다.

이 고사는 중국의 태평성대(太平聖代)로 잘 알려진 요·순(堯·舜)시대로 올라간다.



요·순시대 요(堯)임금이 나이가 들어 나라를 다스리기 힘들어지자 왕위를 물려줄 새로운 인물을 물색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단주(丹朱)를 사랑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계자를 물색하던 요임금은 세상 부귀영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고고한 선비 허유(許由)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허유는 학문도 깊었으며, 겸손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정의만 생각하는 오직 의리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요임금은 그를 찾아가 "청컨대 천자의 자리를 받아주시오"라고 하자 허유는 사양하며 말했다.

"뱁새는 넓은 숲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나뭇가지 몇 개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은 마셔도 자기 배만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祭主)는 음식이 차려져야 제사를 모시지만 음식 하러 부엌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거절한 허유는 말없이 기산(箕山)아래 흐르는 영수(穎水)근처로 떠나버렸다. 요임금이 다시 그를 찾아가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자 허유는 이를 거절하고 "구질구질한 말을 들은 내 귀가 더러워졌다."며 흐르는 영수 물에 귀를 씻었다.

그때 그의 친구 소보(巢父)가 커다란 황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걸어오며 그 광경을 보고 허유에게 물었다. "여보게 생뚱맞게 강물에 귀는 왜 그리 빡빡 씻어대는가?" 허유가 "요임금이 찾아와 나더러 천하(天下)나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 하기에 행여나 귀가 더러워졌을까 하고 씻는 중이라네." 이 말을 들은 소보는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어 버리는 것이었다. 허유가 민망스레 "아니 이 친구야 웃기는 왜 그리 웃는가?"하자 소보의 답이 걸작이다.

"자네가 만일 높은 언덕과 깊은 계곡에만 살았다면 누가 자네를 보고 천하를 맡아 달라고 하였겠는가? 자네가 일부러 떠돌아다니며 명예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기웃거리니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자칫 내 황소입만 더럽힐 뻔 했구먼!" 그러고는 "자네가 그런 더러운 말을 듣고 여기다 귀를 씻었으니 이 물도 더러워졌을 것"이라며 황소를 몰고 위로 거슬러 올라가 상류의 깨끗한 물을 먹였다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매슬로(Abraham H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여 이른바 인간의 5대 욕구를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생리욕구, 안전욕구, 애정·소속욕구, 존경욕구, 자아실현욕구로 구분한다. 이를 잘 살펴보면,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는 모두가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욕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가면서 명예욕구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양의 인품이 높은 선비들은 명예욕에 대해 초연했으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 명예인 왕의 자리를 오히려 불명예스럽게 여기곤 했다.

현대사회는 어떠한가?

피를 토하는 경쟁을 이기려다 보니 양심(良心)과 진실(眞實)마저 흔적 없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조차 잊어버리고 위만 바라보는 위선자(僞善者)가 되어버린다.

조선중기 학자 배용길의 금역당집(琴易堂集)에

'군자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소인은 기뻐하니, 군자는 명성을 부끄럽게 여기고, 소인은 명성을 기뻐한다.'(君子之所恥, 小人之喜也 君子恥名, 小人喜名/군자지소치 소인지희야 군자치명 소인희명)라고 소인의 부끄러운 행태(行態)를 지적했고,

불교경전 유교경(佛敎, 遺敎經)의 가르침에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듯하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듯하지만 사실은 부유하다.(不知足者, 雖富而貧. 知足之人, 雖貧而富/부지족자 수부이빈 지족지인 수빈이부)라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 밭에서의 개 싸움질)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들이 과연 국민을 대표하는 자들이고,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정부요인들인가 하고 국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서로 잘났다고 제 주장만하는 그들을 볼 때 공명심과 충성심, 양심의 소중함마저 잃은 듯하다. 내 편은 무조건 옳고, 네 펀은 무조건 옳지 못하다?....

일국의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그 역할과 책임이 매우 무겁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국민을 속이고도 오히려 떳떳하게 생각하는 사람, 법을 어기면서 그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사람, 많은 사람을 해고(解雇) 하고도 오리발 내미는 사람, 약한 자의 주머니를 털어 호강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한 사람, 불법을 마치 준법처럼 여기는 사람 등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부끄러워 필설(筆舌)로 다 기록할 수가 없다.

국민들은 그냥 답답하기만 하다. 하늘이 어떻게 도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악행 자들에게 공자(孔子)의 말을 빌어 한 마디 하고 싶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 / 획죄어천 무소도야)"

이 말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하늘의 준엄한 경고의 소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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