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짜는 1985년에 확립된 것뿐이고 역사적으로 보면 스승의 날 날짜는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이전에 사람들은 공자의 생신을 스승의 날로 삼아 본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공자는 위대한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교육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9월에 다시 공자의 세계로 돌아가 공자 선생님이 다양한 학생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왜 기뻤는지’, ‘왜 화가 났는지’, ‘왜 실망했는지’, ‘왜 슬펐는지’ 등을 살펴보겠다.
▲공자 선생님은 왜 웃으셨습니까.
공자의 제자 세 명은 자기의 뜻을 말했는데 공자는 자로가 한 말을 듣고 웃었다. 자로가 “저는 늦은 봄에 봄옷이 이미 만들어져 있으면 관을 쓴 5~6명인과 동자 6~7명과 더불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을 쐰 다음 노래하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논어·선진)
▲공자 선생님은 왜 화를 냈습니까.
제여라는 제자가 어느 날에 낮잠을 잤다. 공자 선생님이 “썩은 나무에는 무엇을 조각할 수 없고 거름에 쓰는 흙으로는 담장을 쌓을 수 없다”라고 말씀을 하셨다(논어·공야장) 우리는 낮에 좀 더 자다가 밤에 밤샘 공부할 수도 있지만 고대 물질 조건이 부족하기 때문에 매일 밤 등불을 쓰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였다. 게다가 제여라가 몇 일 전에 열심히 할 거라고 말했다.
▲공자 선생님은 왜 슬펐습니까.
안회라는 제자가 죽었다. 공자가 “하늘이 날 버렸다. 하늘이 날 버렸다”라고 말씀하셨고 통곡했다(논어·선진). 그리고 공자가 “안회가 학문을 좋아했는데, 불행히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라고도 하셨다.(논어·선진)
▲공자 선생님은 왜 실망해 보였을까.
섭공이 어느 날에 공자에 대해 물었는데 제자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가 “너는 왜 그분은 학문에 몰두해서 식사마저 잊으며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인해 근심을 잊어서 늙어가는 것조차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논어·술이) 선생님이 혹시 좀 실망해 보이지 않았을까.
공자 선생님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선생님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도 다양한 선생님들이 있다. 선생님의 노고와 감사함을 기억하여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리 명예기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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