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만 배재대 교수 |
영국의 피아니스트 폴 바톤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의 품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타이 서부의 코끼리들 천국인 'Elephants World'에서 일명 '전원'으로 알려진 베토벤의 교향곡 6번을 연주한 것이다. 이 독특한 콘서트는 기후보호운동의 일환으로 세계의 예술가들이 연주한 '베토벤 전원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1996년부터 타이에 거주하는 영국인들에게 베토벤의 '전원'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원'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는 데 영감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원' 교향곡, 뭐가 그리 특별한 것일까. 베토벤은 자연을 사랑했다. 그에게 자연은 휴식과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고향 본 주변으로 산책을 다니곤 했다. 시골 생활에 대한 갈망이 일평생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이사한 후에도 그는 언제나 자연을 가까이하려 했다. 여름이면 '전원'을 작곡할 휴식처를 찾았다. 교향곡 6번은 1807~8년에 탄생했다. '전원생활의 추억'이란 공연을 위해 위촉을 받아 고즈넉한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보고 느낀 시골의 모습을 음악화한 것이다. 처음에는 타이틀을 'Sinfonia characteristica'나 'Sinfonia pastorella'라고 붙였지만, 최종본에서 'Sinfonie pastorale'로 바꿨다. 'pastorale'는 '시골다운', '시골생활에 부쳐' 정도의 뜻이다. 자연에 대한 그의 하염없는 사랑도 녹아있다. 자연의 소리, 그러니까 속삭이듯 흐르는 개울 물소리, 재잘거리는 새소리, 그리고 격렬한 뇌우 등의 소리를 극대화하고자 트럼펫, 트롬본, 피콜로 같은 '자극적인' 악기의 사용을 극도로 절제했다. 이처럼 자연적 유대감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각 악장에도 '시냇가의 풍경'이나 '폭풍우' 같은 명칭을 달았다.
베토벤의 관심은 그러니까 자연의 묘사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 관계에 있었다. 베토벤은 초기 산업혁명 시대를 살았다. 당시에도 증기기관의 배기가스나 오염된 식수는 동시대인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소음 공해, 이를테면 모자이크식 포석길을 달리는 마차소음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비엔나 사람들은 조용한 곳에서 단지 몇 시간을 보내려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 했다. 19세기 초에는 식수 공급도 아주 열악해서 불결한 물 대신 와인과 맥주를 더 애용하였다. 공기도 이미 오염된 상태였다. 한 편지에서 베토벤은 "도시의 악화된 공기"를 불평하기도 했다. 골목과 운하의 악취는 동시대 사람들이 여름 몇 달만이라도 비엔나를 떠나게 하는 주요인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난 몇 주 동안 기후변화로 힘을 키운 장마 때문에 엄청난 자연재해를 입었다. 이익을 찾아 무분별하게 감행된 난개발은 자연의 순리적인 길을 막아버렸다. 자연스런 물길을 막고, 울창한 숲을 치우고 에너지 단지를 조성하고, 도시의 허파로 남겨놓은 녹지도 시멘트로 뒤덮는 등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몸살을 앓다가 바뀐 체질로 인간에게 경고했을 따름이다.
'베토벤 전원 프로젝트'가 품은 메시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자연파괴를 통한 도시의 팽창과 과밀화가 가져올 환경적인 재앙을 생각한다면, 산업화로 인한 당시의 메트로폴 비엔나의 소음공해와 환경오염을 온몸으로 겪은 베토벤의 몸부림을 생각한다면, 자연보호와 지속 가능한 기후보호에 대한 '전원'발 예술가들의 절규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성만 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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