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 |
그때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은 그대로 남았는지, 요즈음 다시 시끄럽다. 이유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오프라인 서점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 지금의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입장. 절박함을 떠나 두 논리를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지금의 책값이 비싸니 할인이라도 받아야겠다고 말하고, 도서정가제가 지켜져야 그나마 남아있는 지역 서점이나 동네 서점들이 숨이라도 쉴 수 있다고 말한다.
도서정가제는 독자와 오프라인 서점의 싸움이 아니라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싸움이다. 이해관계가 큰 온라인 서점의 이야기는 빠져있다. 뒷짐 지고 누가 이기나 불 구경꾼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이런 태도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환경에서도 온라인 서점의 시장 지배율은 오프라인 서점을 압도하다 못해 일방적인 우위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과 독자들이 싸워서 독자가 이기면 더 좋은 것이고 지더라도 10%의 할인율로 시장을 여전히 지배할 수 있다. 이 문제의 칼자루를 쥔 문화체육관광부에 묻고 싶다. 도서정가제를 깨면 우리 국민이 책을 많이 읽을까. 하나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서점이 단순하게 책만 파는 곳인가.
1년에 신간이 약 8만권이 출판된다고 한다. 2쇄를 찍지 못하는 책이 90%는 넘을 것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2쇄를 찍지 못하는 비율은 비슷할 것 같다. 국민 독서량도 크게 늘어났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책값이 비싸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 하는데 무조건 할인을 해주면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독자는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중 책값이 비싸 책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특별한 책(다수가 선호하지 않는 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이다. 그런 분들한테 미안해진다. 이런 분들을 제외한다면 차상위계층에 복지카드가 나오고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책(우수도서 제도)들이 들어간다. 책값이 비싸 책을 보기 어렵다는 분들을 위해 정부가 따로 대책(도서관 전문화)을 세워야 할 것이다.
도서정가제에 사활을 건 지역이나 동네 서점들을 보자. 온라인 서점의 마케팅에 아사 직전에 있는 지역 서점들은 정가제가 정착이 안 되면 지금(10% 할인)도 어려운데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현실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서점은 이미 단순한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문화를 팔고 지역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다. 동네 독립서점들은 사랑방 역할을 넘어 동네에 맞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아야 속이 시원한가.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오프라인 서점의 생태계를 들여다보자.
20년 넘게 지역 서점을 지켜온 계룡문고, 몇 년 전부터 서점을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서점을 꾸려나가는 삼요소 등. 온라인 서점에서는 할 수도 없고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지역과 동네의 문화 지킴이들이다.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이런 분들을 문화운동가라고 부르면 지나친 표현일까.
책값이 비싸다면 출판과 유통(차별적 할인)문제부터 돌아보라. 지나치게 질 좋은 종이나 거의 쓸모없는 두꺼운 표지, 심지어 띠지까지 붙은 책들이 필요한가. 재생용지 대량생산으로 종잇값을 낮추고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책들은 왜 만들지 않는가. 유럽이나 미국의 책들과 우리의 책을 보면 그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겠다.
이번 기회에 도서정가제를 제대로 정착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 서점들이 조금이나마 허리를 펴 문화공간으로 옮겨갈 수 있다. 동네 독립서점들이 하나둘 만들어져 사랑방 공간이 된다.
지방은 문화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오프라인 서점들이 미약하지만,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 싹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 문체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완전 도서정가제를 정착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쏟을 때다.
/김희정 시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