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종학 교수 |
하지만 격한 감정 누그러뜨리고 찬찬히 생각해보자. '서울'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한강, 남대문, 광화문, 경복궁 등등. 이외에 뭘 또 기억해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들은 모두 조선시대의 유산이 아니던가? 건국 후 대한민국의 작품으로 서울을 상징하는 것들은 아니지 않은가? 눈부신 산업발전 속에 당당히 OECD 회원국이 된 대한민국의 수도로서의 위상과 품위에 걸맞은 연상물은 이해찬 의원 표현대로 한강변을 채우고 있는 천편일률의 성냥갑 아파트 말고는 또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서울이 이럴진대 세종은 어떨까? 대전에서 금남교를 넘어 세종으로 진입하면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하늘 닿을 듯 높이 가로막고 있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이다. 숨이 막힌다. 인적조차 찾기 어려운 거리, 줄줄이 임대 팻말만 나부끼는 텅텅 빈 상가, 자동차 한 대 제대로 주차하지 못해 맨땅 위에 임시로 마련된 주차공간을 헤집고 다니는 민원인 차량이 세종의 현재 얼굴이 아닐까?
이것이 미래를 내다본 천박하지 않은, 그래서 명품 도시 소리를 들어도 봄 직한 대한민국의 행정수도일까? 제아무리 후한 평가를 주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 이곳이 국회의 완전 이전과 청와대까지 수용할 그릇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 세종시의 비교 대상이 우리나라의 주변 도시들이 아니기에, 그렇고 그런 신도시 건설이 아니기에 그렇다.
무엇이 가장 문제일까? 철학과 예술이 없다. 청사 건물과 아파트라는 삭막함에 조화와 방향성 없이 그저 생색처럼 설치한 '국립' 자 붙은 공원과 시설물 등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라면 심한 표현일까? 왜 세종시를 조성했는지, 세종시의 정체성과 기능에 부합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철학과 이들을 조화해내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예술이 없다. 그저 콘크리트 빛 회색 도시일 뿐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도시 조성을 책임진 행복청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깊은 철학과 예술 정신을 가미하지 못한 채 그저 토목과 건설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같은 청의 수장 이력을 지닌 시장의 경력을 비추어보면, 현재 세종시의 모습을 비켜서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그나마 행복청이 조성을 주관할 때만 하더라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올 수 있었고, 나름 체계를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도시계획과 건설에 관한 권한이 점점 행복청을 떠나 세종시로 옮겨오고 있다. 세종시 능력으로 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자체 용역으로 타당성이 있다고 발표한 KTX 세종역 신설사업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토교통부 사무관으로부터 부인되고, 국회를 이전하겠다고 하면서 내년도 예산안으로 겨우 10억 원만 책정된 현실이 답해 주리라고 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세종시의 정체성과 조성 당위성에 미래를 향한 모습까지 담아낼 철학과 예술상을 먼저 형성한 후, 여기에 세부적인 계획들이 들어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혹여 자체적 능력과 경륜이 부족하다면, 열린 마음으로 각계 전문가의 지혜를 빌려야 할 것이다. 세종시가 명품 수도로 자리매김해야 대한민국이 살기에 어려운 말을 전하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의 자체 역량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수도상을 구현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묻는다. 정말 세종시는 준비되어 있는가?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