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한 달 전 '백석 시인의 삶과 사랑'이란 강좌가 있다길래 왕복 4시간의 거리를 마다않고 다녀왔지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子夜)의 사랑이야기를 우리 문단사에 최초로 끄집어낸 전 영남대 국문학과 이동순(李東洵, 1950~ ) 교수는 1987년 월북작가 해금이 되자 그해 9월 ‘백석 시선집(창작과비평사)’을 출간했는데 한 달 뒤 그 시집을 본 할머니 진향(眞香)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곧장 서울로 와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모던보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이야기에 '함흥시절에 쓴 백석 시의 애틋함과 고뇌와 갈등 따위가 일시에 정돈된 풍경으로 다가왔다'며 이 교수는 '백석,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자야 또한 이 교수의 권유로 백석과 보낸 3년의 이야기를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으로 출간하여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 만도 못해'라며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다 1995년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고, 197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자야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들은 마지막사랑이기를 바란다는 사랑의 소유에 대한 성찰의 면죄부를 요구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자야는 사실 평생 백석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어요. 1940년까지 만주에 있는 백석에게 옷가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정계의 고관대작들과 교제한 여장부로 자식도 둘이나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다는 자야의 고백을 믿을 수밖에요. 이렇듯 사랑 자체는 삶의 순간이 아니라 전부일 수도 있어 사랑의 설화는 탄생되어지는 것입니다. 창조의 원동력은 가난과 절실함이겠지만 로맨스가 창의력을 낳는다는 '피카소효과'는 모든 예술과 문학의 기저로 사람들은 사랑의 절망에서 미친 듯이 시를 씁니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읊조리는 릴케의 '가을날'이나 일흔이 넘은 괴테가 열일곱의 올리케를 사랑한 연애시 '마리엔바트의 비가'도 그렇게 탄생되었지요.
그래도 자야가 길상사를 법정에게 시주한 인연의 스토리는 궁금증을 더하고 길상사를 시주받은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는 애매모호한 경계의 화두로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무소유의 역리(逆理)를 실행한 것은 아닌지요. 자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십여 년간 애간장을 태우다 대원각 기생들의 연회에 기자들을 대동하고 황금 칠을 한 떡을 보시하였다는 이 교수의 씁쓸한 말이 내 전두엽에 이명(耳鳴)을 내고 있었습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