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암호는 '잼 만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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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암호는 '잼 만드는 날'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20-09-09 08:13
  • 신문게재 2020-09-09 19면
  • 신가람 기자신가람 기자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어디라 할 것 없이 퍼져버린 듯한 감염의 위험성 때문에 근무 외에는 집에 머무르다 보니 그동안 미뤄놓았던 집안일에 손대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일삼기는 싫어서 그저 눈에 띄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둘씩 하다가 쉬다가 했는데 냉장고 속에 생각이 이르자 새삼 의지가 솟구쳤다. 언제부터인가 자꾸 사들이고 말고 비워나가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도전 과제이기 때문이다.

냉동칸의 떡이며 생선이며 건어물에 이르기까지 사뭇 전투적인 눈길로 유효기간과 상태를 살피며 줄 맞춰 놓다 보니, 냉장칸의 정리를 마칠 때쯤은 피곤해졌다. 야채박스에 들어있는 포도를 꺼내 먹으려는데 오래된 기억-늦여름 집에서 직접 쨈을 만들어 식구들이 둘러앉아 빵에 발라먹던 따뜻한 포도잼-이 떠올랐다. 마침 포도는 싱싱함을 잃어가는 모양새로 잼 만들기에 제격이었다.

옛 추억이 돋워주는 힘 덕분에 피곤함도 잊은 채 잼을 만들었는데, 포도 자체의 당분만으로도 충분히 달고 맛있는 잼이 됐다.



다음 날 자랑삼아 학교에 잼을 가지고 갔다. 어쩌면 점심도 배달시켜 먹는 요즈음의 건조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깨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뿔싸 열쇠를 어디에 흘렸는지 연구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출근길에 만난 학생과 함께 조교 선생들이 올 때까지 대학원생 연구실에 들어가게 됐다. 가벼운 수다 끝에 잼을 만들어왔는데 이른 아침에 빵을 살 수 있는 곳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왔다고 하자 그 학생이 빵을 사 왔다며 내놓는다. 이런 환상적인 우연의 조합이 생기다니!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들뜬 우리는 또 다른 대학원생들까지 합류해 즐거운 아침 다과회(?)를 가졌다. 그 날의 홈메이드 포도잼을 바른 페스츄리 빵과 커피는 작지만 큰 행복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필자의 퇴직 후 생활을 궁금해하는 학생들을 보며 "그래, 집에 초대할 테니 오너라. 그 때 암호는 잼 만드는 날이야"

별스럽지 않은 말에 한껏 깔깔거리며 나눈 맑은 웃음이 하루 업무를 모두 평화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개개인의 행동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니 멋대로 행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감염은 몇 달이 지나도 끝날 기미는커녕 오르락내리락 계속되며, 폭염에 장마에, 태풍까지 더해지니까 인내의 한계치에 이르는 느낌이다.

이런 점에서 방역수칙도 잘 지켜야 하겠지만 이제는 자기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최근 주위를 둘러보면 부쩍 우울해진 사람도 있고 또한 공격적으로 변한 사람도 있다.

부정적인 정서를 자기 안으로 삼키는 사람은 우울해지는 것 같고, 외부로 쏟아내는 사람은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무력감을 느끼고 위축되거나, 언성을 높이고, 짜증을 내고, 남의 탓을 하고, 거친 행동을 하는 등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 행동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시간을 두고 버틸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는 비현실적 기대를 버리고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데 위안을 얻자.

그리고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하자. 대처행동에 있어서는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미 익숙해진 방법을 써도 좋고, 그런 게 없다면 이 기회에 이완법, 운동, 명상, 미술, 음악, 요리 등 다양한 활동으로 생활의 활력을 되찾아보자.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다. 그리고 가능한 웃어보자. 별스럽지 않아도 웃자. 잼 만드는 날, 암호로 미래의 만남을 기약하며 웃듯이/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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