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
얼마 전 개봉한 한국영화 '욕창'에 나오는 대사다. 극장관람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아이 쇼핑하듯 인터넷 정보를 뒤지다가 개봉일이 두 달 넘게 지나서야 이 영화를 알게 됐다.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영화는 한 줄의 대사에 전부 담아냈다. 그래서 선전 문구로도 사용했나 보다. 인터넷 창에서 '욕창'이란 제목을 본 순간, 갈 한복판에 알몸으로 서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낯설고 겸연쩍었다. 나만 알던 감정이 탄로 난 것 같기도 하면서 말이다. 영화 '욕창'에는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지도 흥미를 자아낼 극적인 요소도 없다. 하지만 평론가들 사이 근래 보기 드문 '수작'으로 인정받았다. 다만 코로나 여파로 쪼그라든 영화시장과 작품성 무시된 처참한 관객 기록이 애처롭다.
'욕창'은 외면의 상처를 통해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뇌출혈로 몸을 못 쓰게 된 길순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병 든 아내를 지키겠다는 남편 창식, 불법체류자인 재중동포 간병인 수옥, 이들을 둘러싼 3남매와 가족들…. 살이 썩어들어 신체적 폐허의 극단을 상징하는 욕창을 매개로 등장인물들과의 갈등이 얽히면서 깊숙한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 몸의 욕창이 '마음의 욕창'과 닮아있음을 감독은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를 통해 담담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켜야 선(線)들이 있다. 물체와의 관계를 비롯해 사람과 물체,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등 그 경계에 해당하는 부분들의 연결에 따른 선이 존재한다. 선은 순리(順理)다. 순리를 거스르면 부작용이 뒤따르게 된다. 자연은 자체의 선, 즉 율려(律呂)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율려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당연히 그러함'이다. 선은 자연이 한 치 어긋남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요건 중 하나다. 인간이 경험하는 끔찍한 재해마저 그 자체로써 우주의 선(線)이다.
하지만 자연과 다르게 '선을 지킨다'를 인류에 대입하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작용으로 돌변한다. 이기심을 저변에 둔 감정 덩어리가 수시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배려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라는 말도 선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폐단을 비유한 표현들이다. 인간관계에서의 선은 배려이고 이타심이며 조화다.
영화 '욕창'에서도 인물들의 이기심에서 불거지는 갈등요소가 등장한다. 비자를 받기 위해 브로커를 통한 위장 결혼을 전전해오던 수옥에게 선심을 베풀 듯 자신과의 결혼을 제안하며 외도를 꿈꾸는 창식. 사춘기 딸과 잘나가는 남편 뒷바라지에 치중하지만, 그들로부터 느끼는 고립감으로 괴로운 지수.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면서 정작 아버지를 닮아가는 문수… 이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선을 등지면 괴로움(苦)이 따른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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