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낙준 신부. |
불은 타오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에밀 브루너 박사의 정의에 쉽게 동감이 갔습니다. 바로 그 동감 다음에 나 자신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이 타오름으로 존재한다면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지?" 그리고 "내가 사는 공동체(지역사회, 국가, 인류)는 무엇으로 존재하지?"라는 질문이 이어서 생각이 났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어떤 옷을 입고, 어디서 사는지로 나와 사회와 국가와 인류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서부터는 살 힘을 어디서 구하는지에 따라 존재의 정의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관계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다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도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의 부조리로 인하여 관계망으로 인간의 존재를 표현하기에는 역시 부족합니다.
중세유럽에서 수도원이 대학을 세워 도덕적인 리더십을 가르쳤던 반면에, 현대에 와서 대학은 자신을 출생한 수도원을 버림으로 도덕적인 인간을 기술형 인간으로 돈 만드는 기술결정론을 주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전에 종교가 복지학을 세웠는데 지금은 복지학이 종교를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격이 보여서 다시금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를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기술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국민 2만여 명을 감염시킨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인 코로나19와 기록적인 강수량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전국을 할퀸 폭우 피해 등 겹친 재난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더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재난 이후에는 대다수 사람이 분배보다는 성장을 강조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재난 시기에 재난 이후를 건강하게 세우는 재난 출구 정책을 그려야 할 것입니다.
이때 한국사회에서 인간이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를 질문하는 철학자와 신학자를 더욱 존중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적어도 철학자와 신학자는 인간에 대해 희망을 제안하기 때문입니다. 겹친 재난에 대해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다는 존재 이유로 재난 이후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철학과와 신학과가 사라지는 대학교를 지닌 한국사회는 희망을 이야기할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심이 극대화되는 극단적인 싸움만이 살길이라며 모두가 인간에서 괴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한결같지 못하기에 미완성의 과제를 늘 남기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시작한 일을 매번 끝내지도 못하는 인간입니다.
수건걸이가 된 운동기구가 거실에 놓여 있기도 하고 한 장도 읽지 못한 책이 서재에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사랑을 완성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이 인색한 사랑으로 사는데 선수인 부끄러운 자신을 보기도 합니다.
한때 강했을 뿐이지 늘 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길이 험해서 지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기세에 눌려 쳐지기도 한 인간입니다.
대다수 일은 미완성 과제로 남겨두는 인간이지만 사랑을 향해서는 쉬지 않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사는 것이 한 인간입니다. 이를 드러낸 것이 밥상 잔치입니다. 오늘 누군가를 식탁에 초대하십시오./유낙준 대한성공회 관구장·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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