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코로나 시대의 유치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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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코로나 시대의 유치원 이야기

정선미 다빛유치원 교사

  • 승인 2020-09-03 21:56
  • 수정 2021-06-24 13:51
  • 신문게재 2020-09-04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정선미-1
/정선미 다빛유치원 교사
언제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친구들을 볼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3월이면 입학과 개학을 하고, 7월이면 여름방학을 하고, 9월이면 다시 만나던 우리.

유치원에 오는 날만 기다리던 친구들이, 스물다섯 밤만 자고 만나자던 친구들이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로 인하여 개학 날 유치원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 "선생님, 00이는 언제 와요?" 긴급 돌봄으로 매일 유치원에 나오고 있는 친구들이 못 나오고 있는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5월에 늦은 개학을 해서 두 달 남짓 같이 놀았던 우리 반 친구들. '선생님도 친구들이 보고 싶단다.'

요즘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친구들이 협동 작품을 만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보통 여섯 살의 협동 작품은 발달 특성상 처음부터 각자의 역할을 협의하고 분담하여 진행되기보다는 하나의 배경에 각자 만든 작품을 가져와서 붙이고, 꾸미는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의 배경에서 작업하다 보면 "내 자리야, 나 좁아~", "내가 먼저 붙이고 있었잖아."하는 친구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친구들을 관찰하고 있던 내가 "그럼 선생님이 뒤로 조금 갈게, 선생님은 배려를 잘하니까~"라고 이야기하며 움직이면 함께 작업하던 친구들이 "그럼 우리 조금씩 뒤로 가자."라고 이야기한다. 여섯 살 친구들에게 '배려'라는 단어는 어렵다. 나는 친구들에게 배려를 이야기할 때에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자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자기 중심성이 강한 유아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럼 우리 조금씩 뒤로 가자."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배려'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우리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 공간이 넓어지고, 그 공간에서 친구들과 함께 더 멋진 작품을 만들며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아는 것이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서로 배려하지 않고, 사회적 약속을 어기며,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걸까? 서로를 '배려'하면 서로의 삶이 조금은 더 즐거울 텐데.



올해는 여섯 살 친구들과 성 평등과 배려에 관해서 책도 많이 읽고, 활동도 많이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반 전체 친구들과 좋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소수의 긴급 돌봄 친구들하고만 더 많이 나누게 되어 아쉬움이 크다. 친구들이 유치원에 나왔을 때는 배려와 존중을 중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는데 가정에서도 가족들을 잘 배려하며 지내고 있을까? 친구들과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읽고, 점토로 '엄마 없는 돼지가족'을 만들던 때가 생각난다. 너무 유명한 책이지만 간략히 설명하자면 모든 가족이 엄마에게 집의 모든 일을 다 맡기고 편하게만 지낸 결과 엄마는 집에서 사라지고, 가족들은 점점 돼지로 변해간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우리 가족 수에서 엄마를 뺀 수만큼의 돼지를 점토로 표현해보았다. 우리 반의 만들기가 늘 그렇듯 돼지의 모습은 친구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다.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는 친구들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활동을 돕는다. 몸통과 다리가 있는 돼지, 얼굴만 있는 돼지, 누워있는 돼지, 색깔을 넣거나 장식을 한 돼지까지 다양한 모습의 작품이 탄생했다. 하지만 만들기를 하며 "근데 우리 엄마 없어지면 안 되는데.", "맞아, 우리 집도 돼지집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엄마가 절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같아 보인다.

친구들과 그림책을 회상하며 "피곳씨(아빠)는 왜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하는 나의 물음에 한 친구가 "회사에서 맥주를 많이 먹어서 머리가 나빠졌나 봐요. 우리 아빠도 맥주 마시고 집에 오면 누워서 TV만 봐요."라고 대답했다. 엄마도 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교실 여기저기서 "우리 아빠도 TV보고, 방귀 뀌어요.", "우리 아빠는 잠만 자요." 등등의 대답이 들려왔다. 물론 아빠들이 매일 그러시진 않았겠지만, 우리 친구들이 이렇게 대답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리 반은 특수학급을 제외한 교내 10학급 중 긴급 돌봄 비율이 1, 2위를 다투는 맞벌이 보호자가 많은 친구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겨우 여섯 살인 친구들이 주로 아빠만 위와 같은 모습으로 기억하진 않을 것이다.

마스크를 꼭 쓴 채, 옆 친구가 잘 사용하라고 스티커 바구니를 전달해 주는 모습을 보며 '배려'가 우리 친구들의 몸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낀다. 어른인 우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을 '배려'할 수 있을까? 많은 어른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운동장에서 마스크 안 끼고 달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 생각해보면 좋겠다.

/정선미 다빛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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